필름수프, 필름을 요리하다

2021-01-19 · TECH_KNOW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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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엑타 푸쉬, 필름수프 @Julie Guertin

 

필름을 요리한다고?

무슨 쌩뚱맞은 소리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론 엉뚱한 상상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기도 한다. 필름수프는 필름을
자신의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즈하는 놀이이자 기법이다. 칵테일에 필름을 담그기도 하고, 라면스프와 설탕에 함께 버무리기도 하
고, 끓는 물에 담궈 중탕하기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가학적인(?) 행위는 사진 결과물을 독특하게 만든다. 촬영 전과 후, 그중 어느 때에 처리를 하느냐, 어떠한 액체에 필름을 담그느냐, 중탕을 얼마나 하느냐, 어떤 필름을 사용하느냐, 현상 프로세스는C-41인가 E-6인가 등에 따라서 결과물이 달라진다. 이에 사진가들은 다양한 레시피에 도전하고,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를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한다.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서

레시피에는 정답이 없다. 필름수프는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예컨대, 호다카 야마모토(Hodaka Yamamoto)는 필름에 중성세제룰 묻힌 다음 물에 끓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유제가 손상된 듯한 컬러감과 함께 이미지의 중간중간이 표백제 가루로 인해 보케가 생긴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표현한다. 닉네임 ‘SAMEDER’을 사용하는 로모그래퍼는 다양한 칵테일에 여섯 시간가량 필름을 담근 다음 그것으로 촬영한 결과물들을 ‘미친 칵테일 필름 수프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가장 파격적인 사진가는 역시 브리짓 블룸(Brigette Bloom)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변을 재료로 필름수프를 만들어 셀피를 촬영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날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아침 혹은 저녁의 소변인지에 따라 필름의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코닥 울트라맥스, 필름수프 @Julie Guertin

 

트렌드로 자리잡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필름수프는 특이한 느낌을 원하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 #filmsoup 키워드로 검색하면 3만 개가 넘는 사진을 볼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결과물이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이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집단은 바로 로모그래퍼들이다. 필름수프라는 개념은 2009년쯤 로모그래피 사이
트를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선명한 화질보다는 독특한 사진을 취향으로 하는 로모그래퍼들은 이 개념이 등장한 이래 다양한 레시피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필름수프가 반짝 지나가는 유행이라 생각했겠지만, 의외로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레시피가 등장하면서 그 인기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필름수프를 즐기자!

이처럼 필름에 특수 처리를 한 경우에도 현상소에서 받아줄까? 문득 이러한 궁금증이 들어 국내 현상소 열 곳에 문의해보았다. 결과적으로 현상이 가능하다고 밝혀온 곳은 충무로에 위치한 ‘포토마루’ 하나뿐이었다. 대부분 현상소는 약품 오염 가능성 때문에 접수 불가능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포토마루는 이러한 필름이 접수되면 기존의 현상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프로세스로 진행한다. 새 약품을 사용해 현상한다는 얘기다. 접수 시, 특수한 처리를 거친 필름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야 하며, 비용은 한 롤에 2만 원, 택배를 이용한 접수도 가능하다. 이외의 현상소를 이용할 때에는 사전에 반드시 현상 가능 여부를 물어야 한다.

 

코닥 골드, 필름수프 @Julie Guertin

 

줄리 게르틴의 필름수프

캐나다의 사진작가 줄리 게르틴(Julie Guertin) 역시 필름수프의 매력에 흠뻑빠져 있다. 그녀가 공개하는 자신만의 필름수프 레시피와 노하우.

 

필름수프의 매력

줄리 게르틴이 말하기를, 필름수프는 예상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이미지가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을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필름이 변형되면서 나타나는 색감은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필름 처리를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에너지를 주입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에너지에 의해 독특한 색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그녀는 이를 ‘색의 폭발’이라고 표현한다). 필름수프는 사진가가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효과적인 기법이다. 만약 사진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다면, 필름수프 작업을 통해 여러레시피를 시도해보고, 레시피에 따른 색의 폭발력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녀만의 레시피

줄리 게르틴은 촬영을 마친 후 필름 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라면을 끓일 때와 같이 냄비를 준비해 물을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필름을 넣고 1~2분 정도 중탕한다. 이후 주방 집게로 필름을 건져 올린다. 다음으로 적당한 크기의 그릇 혹은 볼을 준비한다. 요리를 위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릇에 레몬주스와 베이킹소다 그리고 주방세제를 적당량 담고 잘 저어준다. 이후 중탕을 마친 필름을 방금 만든 무알콜 칵테일(?)에 담아 약 20분 동안 저어준다. 완료되면 필름을 며칠 동안 건조 시키고 그런 다음 현상하고 스캔한다.

 

레볼로그 600nm, 필름수프 @Julie Guertin

코닥 엑타 푸쉬, 필름수프 @Julie Guertin

 

줄리’s 노하우

1. 레시피에 많은 물질을 첨가하면 결과물 역시 크게 변화한다. 이는 매력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유제가 완전히 손상되어 아예 이미지가 없어지기도 한다. 적정량을 투하하는 게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250mL의 끓는 물에 45-60mL의 레몬주스를 사용한다.


2. 필름수프 효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프레임 중앙보다 가장자리가 더 많이 변화한다. 피사체를 깔끔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프레임 중앙에 피사체가 들어가게끔 하는 것이 유리하다.


3. 보통 필름수프는 어두운 이미지보다는 밝은 이미지일 때 그 특유의 효과가 더 잘 드러난다.

 

Julie Guertin 10년 이상 꾸준히 사진을 찍어왔으며, 5년 전부터는 아날로그 필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필름사진 캠프 프로그램에서 ‘창조적인 아날로그 사진을 만드는 방법’ 강의를 2년 이상 지속해오고 있다. julieguert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