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포맷 로망스

2021-01-25 · TECH_KNOWHOW

대표 이미지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기분 좋은 무게감. 오른손으로 필름 레버를 아래로 내린다. 이송 중인 필름이 무언가에 걸린 듯 미세한 충격이 손끝에 전해진다. 고개를 아래로 향하니 폴딩 형태의 뷰파인더가 눈에 들어온다. 그 속을 가득 메운 초점판은 렌즈가 바라보는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카메라를 왼쪽으로 옮기니 파인더 속 대상은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길거리의 행인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파인더 속 초점판에 묘사된 행인은 왼쪽으로 이동한다. 프레이밍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던가. 우여곡절 끝에 구도를 잡은 후 초점을 맞추어본다. 초점판 중앙의 원에 피사체를 배치하고, 좌측의 레버를 돌리면서 두 개의 상이 합치되는 순간을 찾는다. 클래식 카메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노출 지시 바늘을 바라보며 셔터스피드와 조리개값을 설정한다. 아!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은밀하게 조용히 작동하는 셔터음과 함께.


위 내용은 에디터 앞에 롤라이플렉스가 있다고 상상하며 작성해본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필름 사진의 진정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해보아야 한다. 손에 잡았을 때 느껴지는 그 묵직함이 주는 전율은 어떻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빠르게 촬영하기는 힘들지만, 우수한 계조표현과 특유의 공간감 표현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다. 


유모였지만 여느 사진가 못지않은 감각을 자랑했던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약 15만 장의 길거리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필름을 현상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사진찍는 시간을 즐겼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평생 네 대를 바꾸어가며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카메라가 있었으니, 바로 롤라이플렉스다. 이 카메라의 어떤 점이 그녀를 매혹했던 걸까. 


평소 중형 필름카메라를 선망하던 에디터는 롤라이플렉스를 포함해 사진가의 로망으로 꼽히는 중형 카메라 몇 가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실제 구매를 위한 정보탐색을 시작했다.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사진가의 로망
롤라이플렉스 2,8F 플라나
영화 속 단골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롤라이플렉스는 독일 브랜드 ‘롤라이’의 TLR제품이다. 20세기 초반부터 60년대까지 전성기를 보냈으며, 당시 프레스와 커머셜 그리고 예술사진 분야까지 두루두루 사용되었다. 바로 보이는 특징은 렌즈가 위 아래로 두 개 장착되어있다는 것. 위쪽 렌즈는 45도로 설치된 거울에 의해 카메라 상단 뷰파인더의 초점스크린으로 상을 맺히게 한다. 따라서 오늘날 SLR과 마찬가지로 초점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단에 위치한 실제 촬영용 렌즈는 리프셔터가 장착되어 있으며 필름으로 빛을 입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SLR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다보니 비교적 작고 가볍다. 촬영 시 미러가 움직이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블랙아웃과 셔터랙이 없다. 별도의 파인더를 장착하면 아이레벨 파인더로 활용도 가능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웨이스트레벨 파인더가 기본 형태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덜 끌어 스냅사진 용도로 적합하다. 하지만 두 렌즈의 위치 차이 때문에 가까이서 찍으면 뷰파인더로 보는 것과 실제 촬영되는 결과물의 구도가 달라지는 단점이 있다. ‘롤라이플렉스 2.8F 플라나’는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F2.8인 고급 라인업 중 1960년부터 81년까지 생산된 모델이다. 후기형 모델답게 셀레늄 노출계가 장착되어있고 필름 카운터를 탑재하고 있다. 120필름을 마운트하여 정방형 포맷으로 12컷 촬영 가능하다. 칼 자이스의 표준렌즈인 플라나(80mm)가 장착되어있으며 렌즈교환은 불가능하다. 


 
 

거침없는 셔터 소리에 담긴 의미
핫셀블라드 503CX
“철푸덕” 핫셀블라드 503CX가 표현하는 묵직한 미러쇼크와 셔터소리는 오늘날 DSLR과는 차원이 다른 손맛을 선물한다. 2017년 중국 DJI에 의해 인수되었지만, 태생은 스웨덴 브랜드인 ‘핫셀블라드’의 SLR제품이다. 또한 이 모델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기록한 카메라로도 유명하다. 핫셀블라드는 원래 코닥을 스웨덴에 독점 공급하는 무역회사였다. 그랬던 핫셀블라드가 카메라를 생산하게 된 계기는 2차 세계 대전 때문이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스웨덴은 다른 나라로부터 카메라를 수입해오기 힘든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 스웨덴 군은 추락한 독일 비행기에서 카메라를 발견했으며, 정부는 핫셀블라드에 해당 기종의 카피를 부탁했다. 당시 핫셀블라드의 사장 ‘프리츠 빅터’가 말한 “동일하게는 못 만들지만, 더 우수한 카메라는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은 꽤나 유명한 일화다. 이후 핫셀블라드는 신뢰도 높은 카메라를 생산해내는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오늘날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들어서까지 중형 포맷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503CX는 SLR 제품으로 오늘날 카메라와 구조가 유사하다. 렌즈로 입사하는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뷰파인더에 상을 맺고, 실제 촬영할 때는 미러가 상단으로 올라간 후, 포컬플레인 셔터가 작동한다. 롤라이플렉스와 달리 보는 렌즈와 촬영하는 렌즈가 동일해 시차가 없고, 렌즈 필터 효과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노출계가 장착되어 있지 않고, 비교적 흔들림에 취약하다. 세 카메라 중 펜타프리즘 파인더를 장착하는 사용자 비율이 가장 높다.
 

 
 
 
 


그 시절 사진관의 비기
마미야 RB67
“크고 아름다운 느낌”이란 바로 이 카메라를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마미야의 중형 SLR은 8-90년대 사진관에서 주로 사용되어온 카메라다. 기계적 완성도와 마감은 핫셀블라드에 비견되며, 그보다 더 큰 부피와 무거운 무게감이 사용자를 압도한다. 렌즈에 따라 다르지만, 표준계열을 마운트 했을 때 보통 2.55kg 정도의 묵직함을 자랑한다. 롤라이플렉스를 양손에 하나씩 든 것보다 두 배 이상 무겁다. 이런 부담스러운 무게 때문에 주로 상업 스튜디오에서 사용되었던 모델이다. 이 모델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누가 보아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카메라는 현재 개인 중고거래로 20만 원대의 매물까지 찾아볼 수 있다. 롤라이플렉스와 핫셀블라드가 최소 10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저렴하다. 보통 중형 포맷 카메라들은 정방형 비율이 많다. 그 이유는 중형 카메라의 무게와 파인더 특성상 세로 비율로 촬영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미야 RB67은 가로세로 7:6의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RB67은 세로 비율 촬영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리볼빙백이라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장착된 카메라이기 떄문이다. 세로 비율로 촬영하고 싶을 때 무거운 카메라를 돌릴 필요 없이, 필름백을 돌리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가로 세로 포맷 전환이 가능하다. SLR인 만큼 렌즈교환이 가능하며, 다른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펜타프리즘 파인더를 장착하면 아이레벨로 촬영도 가능하다.

 


중형 카메라, 너를 가지겠어 

‘롤라이플렉스 2.8F 플라나’부터 ‘핫셀블라드 503CX’ 그리고 ‘마미야 RB67’까지. 모두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모델로, 상태가 괜찮은 제품만 구할 수 있다면 실사용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한때 수백만 원을 호가했던 이 제품을 중고시장에서 구입한다면? 실제 오프라인 샵부터 온라인 매물까지 샅샅이 뒤져보았다. 


충무로를 향한 이유  
홈플러스나 하이마트에서 필름카메라를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오늘날, 필름카메라를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서울에서 필름카메라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은 ‘충무로’와 ‘남대문’이다. 발품을 팔러 가기 전에 사진애호가들의 후기를 찾아 보았다. 그들은 남대문보다는 충무로를 조금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격은 비슷하지만, 전문가와 마니아를 타깃으로 하는 매물이 더 많고, 관리 역시 더 잘된다는 후기가 많았다. 반면, 보다 대중적이고 입문에 적합한 필름카메라를 찾는다면 남대문에 매물이 더 많다고 전해진다. 
이에 에디터는 충무로를 선택했다. 롤라이플렉스, 핫셀블라드, 마미야는 결코 대중적인 매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충무로. 5번 출구로 빠져나와 골목으로 조금 걸어가자 카메라 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략 세어봤을 때 최소 20개는 넘는 듯 했다. 이 중 중고 필름카메라 취급점은 4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암실약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 수리 전문점, 총판 업체, 프로포토와 캐논 등의 브랜드 매장들이 대부분이었다.


매물도 가격도 천차만별  
필름카메라를 취급하는 거의 모든 숍들을 방문했다. 웃으며 친절하게 맞이해준 곳도, 오든 말든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곳도 있었다. 의외로 특정한 매물을 중심으로 특화된 듯 보이는 매장은 없었다. 에디터가 조사중인 매물 세 가지를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많게는 두 개, 적게는 하나도 없는 매장도 여럿 있었고, 같은 매물을 여러 개 보유한 곳도 있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롤라이플렉스 2.8F의 경우, 믿기지 않는 70만 원짜리 매물부터 다른 의미로 믿기지 않는 260만원짜리 매물까지 존재했다. 마미야 RB67의 경우 매장에 따라 40만원부터 80만원까지 두 배 차이가 났고, 비교적 편차가 적었던 핫셀블라드 503CX는 130만 원대부터 170만원 대까지 있었다. 에디터의 예상보다 매장별로 가격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났다. 


시세 대비 지나치게 저렴한 물건이 있다면?  
발품을 팔아 매물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무턱대고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롤라이플렉스 2.8F의 경우 하자가 없다면, 70만원이라는 가격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카메라이다. 이처럼 저렴한 매물이 있어도, 대부분의 매장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사용감이 많다는 말로 얼버무리기도 했다. 
중형 필름카메라는 대부분 수십 년 이상 된 매물이다. 연식이 있는 만큼 100% 완벽한 매물이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주변 시세 대비 확연히 저렴한 매물은 일단 의심하는 게 좋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자 여부를 100%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스스로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사전에 공부해갈 필요가 있다. 반면, 비교적 비싼 매물은 그 이유가 정확했다. 박스가 포함되어 있고 새 제품에 가까운 매물인 경우로 이들 대부분 가격대가 높다. 반면, 마운트 흔적조차 없는 완전 새 제품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용자 부주의로 인한 고장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매장들은 일정기간 무상AS를 보장한다. 둘러본 결과, 보통 2-3개월 정도의 보증기간이 가장 많았고, 6개월 보증해주는 곳도 제법 있었다. 보통 촬영에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결함은 알아차리기 쉽지만, 렌즈 해상력 등은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따라서 구매를 결정했다면 보증기간까지는 실사용하면서 꼼꼼히 결과물을 점검해보기를 추천한다.



장점도 있지만 위험 부담도 따르는 ‘온라인 중고거래’  
다음은 개인 간 거래와 비교해보기 위해 네이버의 유명 중고거래 ‘카페’와 장터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커뮤니티’ 두 곳의 매물을 조사했다.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의외로 매물이 오프라인보다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롤라이플렉스 2.8F의 경우, 이 기사를 작성할 당시 최근 3개월간 고작 5개의 판매글이 올라왔다. 이마저도 대부분 판매된 이후여서 실제 구매 가능한 매물은 단 하나 뿐이었다. 가격대는 컨디션에 따라 135만원부터 210만원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핫셀블라드 503CX는 3개월간 6개의 매물이 나왔지만, 구매 가능한 매물은 역시 하나뿐이었다. 가격대는 대략 105만원부터 125만원까지였다. 반면, RB67은 3개월간 10개로 비교적 많은 매물이 포진하고 있었고, 거래 가능한 제품도 제법 있었다. 가격대는 20-40만 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공통적으로 오프라인 숍에 비해 약 30-50% 가량 저렴했다. 최근까지 실사용 하던 기기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기기들도 많이 보였다. 매물을 기다리는 수고로움과 보증과 사기에 대한 위험부담을 안고갈 자신이 있다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중고거래가 더 괜찮아 보인다.


중고거래,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에는 늘 사기꾼이 도사리는 법이다. 약 15년 동안 수십 개의 매물을 중고로 거래해본 에디터에겐, 사기를 안 당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우선 ‘삽니다’라는 키워드로 글을 올리지 않기를 추천한다. 사기꾼들은 자신의 아이디를 노출시키기 싫어한다. 게다가 삽니다 글은 저렴한 매물을 찾는 사람일 확률이 높으므로, 사기꾼의 제 1 타깃이 된다. 실제로 삽니다 글을 올리면 매력적인 매물을 갖고 있다는 톡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기꾼은 왜 문자가 아닌 톡으로 메시지를 보낼까? 통신사와 직접 연결되는 문자는 개인정보이므로 신고 시 덜미가 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판매 게시글의 연락처에 카카오톡 아이디가 게시되어 있다면 그 매물은 거래하지 않기를 권한다. 하지만 중형 필름카메라는 워낙 마이너한 장르이다 보니 사기꾼이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팝니다’로 올라온 게시글은 실제 매물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판매자의 예전 게시글을 보고, 신뢰할 만하다 판단되면 선입금 후 택배거래를 해도 대부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 물론 입금 전 ‘더치트’라는 사이트를 통해 사기 이력을 조회하는 과정은 필수다. 그럼에도 택배보다는 직거래를 더 추천한다. 사기의 위험보다는 중형 필름카메라의 특성상 하자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 중고거래는 반품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금액을 넘기기 전 미리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정도 원칙만 지킨다면 개인간 거래도 문제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