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_ 교훈과 사랑

2021-02-19 · ART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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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라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주제를 작가이자 기획자인 김동규에게 던져보았다. ‘작가의 삶’, ‘정직하게 작가가 되는 방법’ 등을 묻는 편집부 질문에 돌아온 김동규의 애정 어린 답변.

 

‘돌팔이 예술가의 독백 - 더빙 – 극’ _ 김동규, <fourteen>(2017) 스틸컷. 전체 영상은 유튜브에서 ‘주간창작 fourteen’ 검색

 

나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두루두루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라던지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와 개인차를 막론한 성공의 일반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훌륭한 예술가로서의 미덕과 훌륭한 공무원으로서의 미덕과 훌륭한 사업가로서의 미덕에는 큰 차이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의 삶으로부터 일반론적인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면, 냉소나 열패감은 잠시 넣어 두고 자기개발서라도 사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교훈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질 것이다. 당신이 ① 명확한 목표와 ② 구체적인 전망, ③ 원만한 인간관계와 ④ 부단한 성실함 따위의 일반적인 사회적 미덕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면, 당신은 예술계에서도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소위 ‘성공한 예술가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미덕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비꼬거나 농담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문제는 ①' 막연한 동기나 ②' 추상적인 열망, ③' 삐걱대는 인간관계와 ④' 제멋대로인 불성실함 따위의 반(反)사회적 미덕들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인 성취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부족한 가설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사람이 왜 그런 가설을 세우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반골적인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멍청해서일지도 모르지. 여하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명백히 이쪽 인간인데, 그렇다고 해서 일반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론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사회적인 성취들에 대해 도통 관심이 가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 성취를 위해 시간을 쓰다 보면, 내 삶이 부당하게 마모되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감각에 휩싸여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버리는 걸 어쩌겠는가. 그러므로 경제적인 안정이나 전문가로서의 권위 등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깨끗하게 포기.

 

그렇다면 나름 진지하게 창작 활동에 임해온 지난 십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 진지했던 것인가. 사회적인 성공의 미덕들을 갖추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예술적 ‘역(逆)성취’라는 것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김 빼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그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나는 아직 성취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둘째, 내가 이미 이룬 성취에 대해서 내 입으로 지껄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셋째, 나의 성취는 당신에게 독이다.

 

어쩌면 기성 창작자의 조언이랍시고 이 지면에 끼얹어대는 문장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을 도와주고 싶다는 막연한 동기와 여러분을 도와줄 수 없다는 명쾌한 결론의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만 내가 유감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떨리는 손으로 이제 막 창작자로서의 첫 삽(질)을 뜨고 있을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면식도 없는 신입 창작자들을 바라보는 내 두 눈에, 세상 모진 꼴은 다 겪고 돌아온 탕아의 모습이 인화된다. 잘 돌아왔다 읊조리며 등을 두드리면, 사람 잘못 보신 것 같다 놀라며 물러서겠지. 정체불명의 여러분을 향한 수취인불명의 나의 사랑이, 나는 전혀 부끄럽거나 의심스럽지 않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말이다.

 

김동규 예술 애호가이자 기호 수집가이자 미술 탐정. 혹은 사이비 크리에이터. 유튜브에서 ‘주간창작’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