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져 있다는 의미이자,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역사 공부’는 필수다. 하지만 무작정 교과서에 달려들다가는 금세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역사 공부에 관심이 커진 역·알·못 에디터가 재미있게 본 역사 콘텐츠를 소개한다.


뒤죽박죽 교육
나는 ‘역·알·못’이다. 말 그대로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뒤죽박죽인 교육 정책 영향이 크다. 나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고, 창의성과 도덕성이 처음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제6차 교육과정’과, 건전한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시킨다는 취지의 ‘제7차 교육과정’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분명 한 나라에서 나온 정책인데, 두 교육과정은 확연히 다르다.눈에 띄는 건 단연 ‘국사’ 과목이다. 제6차 교육과정 수능에선 ‘국사’ 과목 시험을 봤지만, 제7차 교육과정 수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둘 다 똑같이 ‘자연계’로 응시했는데 말이다. 진로에 맞춰 각자 다른 심화 과정에 집중하라던 제7차 교육과정 자연계 학생에게 사회탐구 공부는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사 공부의 흐름이 깨진 셈이다. 이후 한국사(국사라는 명칭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한국사로 변경)가 다시 필수과목으로 지정됨으로써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역사를 공부해야 했다. 한국사를 응시하지 않으면, 전체 수능성적이 무효가 됐기 때문이다. 웃지 못 할 촌극의 연속이다.


사진사는 사진만의 역사가 아니다
굳이 개인의 부끄러운 역사를 끄집어낸 건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떤 분야를 공부하더라도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깊은 이해가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는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평가하고, 오늘을 첨예하게 인식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권력을 쥔 자들이 영요영화(榮耀榮華)를 위해 역사를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 하는 것이다.
잠시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 ‘사진사’로 범위를 좁혀 이야기해보자.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배우는 사진사는 서양의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현실이다. 수업은 연도별로 어떤 기술이 등장했고, 어떤 사진이 논쟁거리가 됐는지 무작정 암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시험만 끝나면 기껏 외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것이다. 과거를 빗대 현대사진을 분석한다는 건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속적이라는 역사 관점에서 본다면, 학교의 사진사 교육은 역사적 가치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진사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만의 정체성이 있을 텐데,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학교에서 만나보기가 어렵다. 어쩌면 한국 사진의 역사가 여태껏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건 이런 연유에서일 테다. 이는 개방과 개화가 시작된 시기 우리나라 사진의 특징이라든지, 살롱 사진이 리얼리즘으로 전환된 사건이 무엇인지 등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이를 자각하게 된 건 해외에서 어떤 사진 역사학자를 만나면서다. 한국전쟁 사진을 이야기하는데, 한국인보다 6·25에 관해 많이 아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사진 역사(Art History)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History) 전문가로도 유명하다는 것.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그 사진이 탄생한 시대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니,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역사를 공부하겠노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역사를 손에서 놓았더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무작정 교과서를 구매했지만, 쉬이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보수 정권이 일본의 역사 왜곡에 힘을 실어준 것이 마음에 안 들고 교육과정이 계속 바뀌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그나마 학생들이 한국사 공부를 필수로 하게 한 것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던 것 같다.

영상으로 보는 과거의 시간
다른 콘텐츠로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 구미를 당긴 건 교과서가 아닌 예능프로그램이었다. 바로 <1박 2일>의 ‘하얼빈 특집’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멤버들이 직접 하얼빈을 찾았던 편은 지금도 ‘예능 레전드’로 회자된다. 특히,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했던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딴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라는 말은 마음에 큰 울림을 줬다. 더욱이 ‘바보 캐릭터’의 대명사 김종민이 역사 문제를 맞히는 것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1박 2일>이 역사 공부의 모멘텀이 됐다면,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에 흥미를 붙여준 프로그램이다.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 하루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까닭에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역사적 사건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다. <선을 넘는 녀석들>도 있다. <역사저널 그날>이 시사·교양에 가깝다면, <선을 넘는 녀석들>은 대표적인 인포테인먼트다. 주요 콘셉트는 여행이지만, 역사 강사 설민석이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해줘 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 ‘본투비 역·알·못’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게스트 역시 역사에 전문적이지 않아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미 개봉된 영화 <김복동>과 <주전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매우 날카롭게 일본군 ‘위안부’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의 여정을 담았고, <주전장>은 역사 수정주의자 인터뷰를 통해 진실이 어떻게 호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주전장>에는 “중국은 곧 붕괴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일본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국은 훌륭한 친일 국가가 될 것이다. 정말 귀여운 나라다.”라는 말이 나온다.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는 것과 동시에 ‘국가가 독점적으로 창출해낸 역사의 기억은 굉장히 위험하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화제의 역사 신간
논란이 된 신간도 있다.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다. 출간 두 달 만에 10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읽다가 피로감을 느껴 그대로 접었다.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한다지만, 개인적으로 ‘비추’를 주고 싶다. 심지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비판했다. 아무리 봐도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을 옹호하는 느낌이다. 저자가 속한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일본 우익세력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것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새로운 책을 찾아보았다. 사진으로 보는 역사책이 눈에 띈다. 두 권은 우리나라 이야기를 담았고, 한 권은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 200장면을 선별했다. 먼저, <조선의용군의 눈물>(눈빛 펴냄)은 그동안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 만주벌판을 누벼온 사진가 박하선이 조선의용군의 흔적을 추적하며 찍은 사진과 적은 산문을 수록한 책이다. 목숨을 바쳐가며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 독립군의 눈물을 닦아 주는 데 의의가 있다. <헬로 코리아>(눈빛 펴냄)에는 미군이 6·25전쟁 휴전 무렵 촬영한 국내 지역 풍경이 담겨있다. 1953년부터 1954년 2월 사이에 찍힌, 슬라이드 마운트로 보관된 컬러사진 100여 장을 만나볼 수 있다. 전쟁의 파괴와 죽음, 절망의 긴 터널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오는 한국인의 생동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색>(윌북 펴냄)은 1850~1960년 촬영된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한 책이다. 세상은 총천연색이지만, 흑백사진에는 오직 두 가지 색만 존재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되레 흑백이 사건을 위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진을 통해 각인된 혹은 세뇌된 기억이 진실이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세 권에 게재된 사진들은 다음 장에서 더욱 상세히 만나볼 수 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해석된 것이라고 한다. 하나의 사건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권력자의 해석이 ‘팩트’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앞에서 열거한 역사 콘텐츠도 결국엔 재해석된 것이다. 어떤 것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내용이 미묘하게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말이 아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자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여러 가지 사료를 비교·대조한다면, 다양한 시선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증거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고집 피우는 행동은 지양하도록 하자. 눈앞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짓밟는 행위는 분명 정상은 아니다. 역사를 알지만, 굳이 미래가 없는 민족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역·알·못’인 게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공부하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