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체적 나이 듦에 역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투영한 ‘로렌 그린필드’, <미스 시니어 아메리카>, 2008 ⓒ 로렌 그린필드/인스티튜트

치매를 겪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 남은 삶의 의미를 묻는‘삼 프사 비르카예르비’, <남아 있는 건 무엇일까요>, 2015-2018,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2분32
<은교>에 등장하는 노시인 이적요는 말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 <은교>는 저조한 흥행과 반비례한 호평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화다. 나이와 상관없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그려냈다는 점이,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 최대의 과제에 대해서 성찰하게 했다는 점이 대중과 평론가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건 비단 영화 속 주인공만이 아니다.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청년이나 장년이나 매한가지다. 천하를 주름잡았던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파우스트는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버렸다. 게다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동시대 유명인들조차도 만약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전 재산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한다. ‘동안’이 최고의 미덕이요, 자신과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이 조금만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뒷방 노인네’, ‘꼰대’ 취급하기 일쑤다. 하지만 젊은 사람도 언젠가는 늙는다. 자칭 꼰대가 아닌 사람도 다른 집단에 가면 누군가의 꼰대가 될 수 있다. 상투적이지만, 이는 세상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다. 어쩌면 젊음과 늙음을 어떤 잣대를 기준 삼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행태가 오늘날의 갈등을 더 악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행가도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내 나이가 어떠냐고 반문하지만, 어찌됐든 ‘나이 듦’으로 귀결되는 문제들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가오는 세월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고, ‘나이’에서 기인한 세대 간 갈등은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이라는, 남아있는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젊음과 늙음을 둘러싼 개인적·사회적 양상을 살펴보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것 아닐까. 결국, 마지막에 다다르는 것은 젊음과 늙음을 인정하는 ‘상호 간의 배려’겠지만, 이를 통해 허우룩한 가슴을 달래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와 같은 ‘젊음 강박증과 늙음 기피증’을 고찰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가 시의적절하게 현재 서울시립미술관과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에이징 월드>는 사회 시스템에 관해, 코리아나미술관의 <아무튼, 젊음>은 개인의 마음가짐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다. 두 전시 모두 미학적인 방식보다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접근해야 효과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가족계획과 에코 세대의 가족계획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옵 티컬 레이스’, <1자녀 1주택>, 2019,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 사진 남기용

어머니 삶을 다루는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준‘ 나탈리아 라사예 모리요’, <은퇴>, 2019, 3채널 영상 설치, 사운드, 버티컬 블라인드, 39분41초 ⓒ 나탈리아 라사예 모리요

얼굴 위 균열을 통해 피부 노화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강박을 이야기하는‘안 네 올로프손’,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안네)>, 2004, 125x100cm
연령차별주의가 유발한 사회 문제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첨단 의료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을 늘려놓았다. 더불어 출산율 감소는 60세 이상 인구 비율을 두 배 가까이 증가시켰다. 한국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65세 이상 연령대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노화를 낡음과 쇠약함의 상징으로 단정짓는다. 경제적 논리를 통해 노화를 바라보는 건 당연지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용어가 있으니, 나이에 근거한 차별과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연령차별주의(Ageism)’가 바로 그것이다. ‘연령차별주의’는 개인 및 집단 간의 억압과 소외, 불평등을 유발하고, 전 세대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대중매체는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까지 강화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에이징 월드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10.20)는 전 지구적으로 직면한 고령화 문제, 특히 한국 사회 안에 깊게 자리 잡은 연령차별주의와 이를 둘러싼 동시대 논쟁거리를 조명하는 전시다. 노화를 둘러싼 부정적인 인식을 살펴보고, 연령차별주의가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섹션 ‘불안한 욕망’에서는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바탕으로 획일화된 미의식을 좇는 현대인들의 강박적인 자기 관리와 소비를 살펴보고, 두 번째 섹션 ‘연령차별주의 신화’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인과 집단이 노화에 대해 가지는 서로 다른 인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섹션 ‘가까운 미래’는 나이 들기 어려운 사회에서 늘어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안한다. 노화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마음가짐보다는, ‘나이 듦’을 바라보고 이용하는 사회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보인다.
전시는 로렌 그린필드(Lauren Greenfield)의 작업으로 시작한다. ‘미스 시니어 아메리카’, ‘시니어 치어리딩’ 같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장면들이 흥미롭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영향으로 신체적 나이 듦에 역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포한다. 전형적인 노인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사진들은 겉으론 유쾌하지만, 동시에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좇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이로 인해 여사님들이 느끼는 건강, 활력, 매력 유지에 대한 압박감을 드러낸다. 이어서 윤지영은 영생을 꿈꿨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아킬레스, 지크프리트, 탈로스의 이야기와 강박적인 건강 염려증을 겪는 인물의 삶에 주목한다. ‘영원불멸’을 향한 맹목적 열망이 좌절로 치환된 모양새다. 또한, ‘커먼 어카운츠’는 미군 기지에서 도입된 미용 성형산업과 온·오프라인에서 성행하는 성형을 통한 자아 재구축 등을 설치작업으로 표현했으며, 이병호는 시간에 따른 신체의 물리적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노화의 외형에만 집중하는 시선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섹션 참여 작가들은 사회 곳곳에서 나이를 근거로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연령차별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피부 노화에서 오는 불안과 강박을 40대 전문직 여성들의 초상사진으로 표현한 안네 올로프손(Anneè Olofsson), 한때는 산업역군이었으나 지금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잃어버린 노인을 묘사한 박은태, 특정 연령대 여성을 지칭하는 말에 담긴 편견과 혐오를 시각화한 오형근의 작업을 주목할 만하다. 노년의 삶의 양식과 미래 환경을 예측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안을 던지는 작가들도 있다. ‘일상의 실천’은 키오스크를 이용해 실버타운을 구성하고, 이에 필요한 자본을 보여주며, 그래픽 디자이너와 부동산 연구자가 만난 ‘옵티컬 레이스’는 자녀 미래를 위한 베이비붐 세대의 가족계획과 부모 노후를 위한 에코 세대의 가족계획 사이의 교착상태를 시각화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전시의 결정적 한 방은 와이즈 건축의 ‘회재: 문이 없는 집’이다. ‘돌아올 회(回)’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집은 벽도 문도 없이 공간이 연결되어 나이 든 주거인을 걷게 하며, 사방으로 열려 매 순간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분명 작업은 ‘운동에 대한 강박 없이도 자연스레 건강을 돌보는 공간의 힘을 환기한다.’라고 하지만, 공간 안을 걷고 있노라면 사회에서 분리돼 하염없이 똑같은 풍경만 반복해서 바라보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라 막막함에 직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대 갈등이 얼마나 작은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는지를 제시한‘존 바이런’, <Mind the Gap>, 2011, Courtesy of the artist


마사지 방향을 표시한 화살표를 얼굴에 그려 넣고, 그 방향대로 문질러 없애는 퍼포먼스, ‘산야 이베코비치’, <Instruction #1>(1976) & <Instruction #2>(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espaivisor, Valencia

젊음과 늙음, 가상과 현실 사이엔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음을 피력한‘신 디 셔먼’, <Posted on Aug. 4>, 2017 ⓒ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몸소 체험하는 모순
서울시립미술관의 <에이징 월드>가 현대사회와 고령 인구의 불편한 동거를 그렸다면, 코리아나미술관의 <아무튼, 젊음>(~11.9)은 나이 들어가는 것에서 유래하는 근심 걱정을 떠오르게 한다. 다시 말해, 지나간 젊음을 돌아보고, 다가올 늙음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전시 역시 ‘끊임없이 젊음을 권하는 사회’로부터 시작한다. 늘어난 기대수명 앞에서 조금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싶은 희망의 표현이겠지만,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돈과 직결되는 정형화된 ‘젊음’의 이미지는 결국 집착의 대상이 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통상적으로 지칭하는 20~30대 청춘만을 젊다고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확장된 개념으로서 젊음을 바라본다. 인상적인 점은 예술가라고 해서 젊음과 늙음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들도 하나둘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게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전시 서막은 ‘몸’을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들이 연다.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건 1976년 제작된 산야 이베코비치(Sanja Ivekovi?)의 영상 작업이다. 얼굴 마사지 방향을 표시한 화살표를 얼굴에 그려 넣고, 그 방향대로 문질러 없애는 퍼포먼스다. 작가는 열심히 얼굴을 문지르지만, 얼굴은 얼룩진 채로 남아있다. 흥미롭게도 작업 맞은편에는 이 퍼포먼스를 재연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40년이 지났지만, 젊든 늙든 주름을 펴고 난 뒤에 남는 것은 ‘얼룩(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압박)’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다음으로는 젊음을 향한 욕망이 과도한 운동과 근육질 몸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나는 것을 표현한 곽남신의 드로잉과,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젊고 매력적인 남성이 권력임을 보여주는 조니 사이먼스(Johnny Symons)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성성, 나이, 젠더 역할 등을 고찰해온 마사 윌슨(Martha Wilson)의 사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해 정치·사회적 이슈를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여성으로서의 고민이 더 깊게 배인 듯한 모습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주디 겔스(Judy Gelles)의 작업도 있다. 그는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동안 만났던 28세~78세 예술가들에게 나이를 묻고, 자신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작업은 예술가라 하면 두세 차원 차이가 나는 독특한 고민을 할 것 같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고민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음이 가장 동한 건 존 바이런(Jon Byron)의 영상이다. 공원에서 매번 만나지만 소통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노인과 청년의 모습을 통해 세대 갈등이 얼마나 작은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김가람의 참여형 퍼포먼스도 추천한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롤라장’ 안에서 한쪽에만 바퀴가 달린 짝짝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자신만의 유행가를 듣는 것이 핵심이다. 바퀴가 없는 왼쪽 스케이트에선 닳아버린 청춘이, 바퀴가 달린 오른쪽 스케이트에선 현재진행형 청춘이 연상된다. 롤라장을 돌다 보면 예전 기억과 감정이 떠올라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더욱이 짝짝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보면, 균형 잡는 것이 어려워 이내 몸이 결리게 된다. 마치 안정을 권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몸소 체험하는 느낌이다. 한편, ‘입자필드’는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층의 삶을 보여준다. ‘교통, 숙박, 여행, 건강, 금융, 쇼핑, 구인, 뉴스, 배달, 부동산’ 카테고리를 선정하고, 이에 속한 101개의 앱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차례로 열거된다. 각 연령층의 수요와 스마트폰 숙련도에 따라 설치되는 앱들은 디지털 시대에서 소외되어가는 노년층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까지 짚고 넘어간다. 이와 함께 각자의 개성을 살려 멋지게 차려입은 시니어들을 촬영한 아리 세스 코헨(Ari Seth Cohen)은 ‘젊음’이 외모가 아닌 내면의 열정임을 이야기하며,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SNS 안에서 자신의 셀피를 왜곡하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젊음과 늙음, 가상과 현실 사이엔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음을 피력한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젊고 매력적인 남성이 권력임을 보여준‘조 니 사이먼스’, <Beauty Before Age>, 1997, Courtesy of the artist

각자의 개성을 살려 멋지게 차려입은 시니어들을 촬영한‘ 아리 세스 코헨’, <Advanced Style>, 2012-, Courtesy of the artist

바퀴가 달린 짝짝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자신만의 유행가를 듣는 참여형 퍼포먼스. ‘김가람’, <Unbalance>, 2019, Courtesy of the artist
조지 오웰은 “각 세대는 스스로를 앞선 세대보다 똑똑하고, 다음 세대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세대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늙음을 ‘틀딱’으로 치부하고 무시하진 않았는지, 반대로 상대방 나이가 어리다고 ‘너 늙어 봤어? 나 젊어 봤어!’ 하며 하대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이 연장선에 <에이징 월드>와 <아무튼, 젊음>이 있다. 두 전시 모두 늙음을 대하는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마음가짐을 논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개개인이 나이 드는 속도와 그에 걸맞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전시 설명 글을 보면, 젊음과 나이, 세대는 모두 상대적일 뿐, 고정된 것은 없다고, 젊음이 수행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젊음과 늙음을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통념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야만 안티에이징이 아닌, 러브에이징 시대를 성숙하게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아무리 ‘젊음’이 상대적이라지만, ‘신체나이’ 관점에서만 본다면 우리는 ‘젊은이’보다 ‘늙은이’로 살아갈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