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된 르네상스 회화
배찬효의 작업은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독특하다는 얘기다. 남자 사진가가 직접 그 시대 여성으로 분장한 것도 특이한데, 작품 속에 은근 슬쩍(!) 등장하기까지 한다. 결코 흔한 일도, 쉽지도 않은 선택이다. 기이하면서도 인상적인 이유다. 이전까지 그는 동양인으로서 서구사회에서 느끼는 소외와 차별의 경험을 작품에서 이야기했다. 이전 작업에서는 백설공주 같은 동화 속 주인공, 영국 역사 속 인물 등 서구의 대표적 인물들로 분장해 등장했다. 최근 시리즈 <서양화에 뛰어들기>는 이전 작업과 결이 조금 다르다. 자신의 직관과 무의식적 자아에 이끌려 시작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는 서양 이야기 속 여성 인물로 직접 등장해 서구 사회의 편견과 그에 동반되는 폭력을 간접 경험했다. 그러다 문득 서양화 속으로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그 결과는 이전과 다르게 벅찬 만족감과 흥분의 연속이었다. 그가 상상한 장면을 실현시킴으로써 자신을 옭아맸던 서구사상을 이해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양상이다.
그는 먼저 2017년 르네상스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굳이 르네상스 시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편견과 소외감을 안겨준 서구 사상의 뿌리가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받고 그녀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한다는 내용의 <파리스의 심판>, 처녀로 남기로 맹세했으나 제우스에게 순결을 뺏기고 임신해 비난을 받았던 칼리스토를 담은 <다이애나와 칼리스토>가 그 예다. 자신이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간 이유에 대해 배찬효는 “서양화에 ‘뛰어들기’는 곧 나 자신에게 ‘뛰어들기’이고, 이는 나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타자화 한 문화와 사상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역으로 그들을 타자화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한 장의 사진이지만, 그것을 위한 과정 자체가 하나의 행위 예술이자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치유의 여정처럼 보인다.
작업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된 명화를 복사 촬영한 다음, 그것을 인화지 대신 젤을 바른 가죽에 프린트했다. 이는 중세 권위에서 탈피해 인간 중심으로 사유를 전환한 르네상스의 탈권위적 성격과 닮아있고, 서구 사상 체계에 대한 그의 도전이기도 하다. 그를 명화 속 인물로 탈바꿈시킨 전통 의상은 영국국립극단에서 대여해 직접 연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