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올려 심연을 벗어나 _ 정윤순

2021-03-23 · ART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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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제1회 FNK PHOTOGRAPHY AWARD> ‘Fine Art’ 부문 수상자인 정윤순의 개인전 <Me, Escape>가 열렸다. 트라우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의 진솔한 탈출기.

 

 

<제1회 FNK PHOTOGRAPHY AWARD> ‘Fine Art’ 부문 수상자 정윤순의 개인전을 본 사람들의 말을 한데 모아보면, 약간의 과장을 보태, ‘문제작(?)의 등장’으로 귀결된다. 먼저, 경주대 김성민 교수는 “경력만 보면 넘쳐나는 ‘아마추어’ 사진가 중 하나쯤으로 넘겨짚을 수도 있지만, … ‘대형 사고’에 버금가는 큰일을 벌인 그에게 사진가라는 이름을 당당히 붙여주고 싶다.”라는 표현을 전시 서문에 게재했다. 또한, 전시를 본 에디터와 주변 사람들은 공통으로 “비록 익숙한 형식이나, 무언가를 갈급 혹은 갈망하는 듯한 사진 속 작가의 표정과 왠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이 시선을 끌어당긴다.”라는 말을 했다. 궁금했다. 왜 그의 작업이 보는 이를 마력과 매력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는지. 공고히 자리 잡고 있던 심연의 고통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정윤순의 <Me, Escape>를 보며 들었던 몇 가지 궁금증을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처음’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 소회가 궁금하다.
작가는 작업하는 사람이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일이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여 본인의 생각을 작품으로 펼치는 것이다. 내 작업의 긴 행보를 봤을 때 첫 작업인 <Me, Escape>는 개인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후 구상해놓은 시리즈가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작업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이 ‘Me, Escape’다. 무엇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나. 그리고 ‘I’가 아닌, ‘Me’를 사용한 이유는?
2015년 1월 16일, 첫눈이 내린 고속도로에서 43중 추돌사고가 났다. 이로 인해 무려 6개월을 사방이 커튼으로 막힌 병실 침대 위에만 누워있었다. 담당 의사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신에게 감사하라.”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당시 육체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고, 정신적으로는 심한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병원 밖으로 나오니 나의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Me, Escape’에는 ‘I’가 탈출하려는 것보다, 어둠 속에 갇힌 ‘Me’, 즉 나 자신 스스로에서 탈출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병원 천장에 있는 형광등 불빛이 아름답게 다가왔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병원에 있던 6개월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나만의 공간에 갇힌 느낌이었다. 매일을 눈만 뜨고 병실 천장만 바라봤으니까. 웃을 일도 없었다. 그때 제일 많이 쳐다본 것이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었다. 어느 날인가, 천장을 보고 있는데 형광등 불빛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그날따라 어찌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당시의 느낌은 좌절과 낙심의 어둠 속에 있던 내가 희망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됐다.

 

 

작업하면서 늘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묻는다고 했다. 왜 굴착기에 매달렸고, 왜 물에 빠진 채 사진을 찍었나?
병원에 오래 누워있으면, 사람이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으니까. 싫어도 수액을 맞아야 한다. 이를 사진에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결론은 인간보다 힘이 강한 굴착기에 매달린 채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마치 나약한 나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편, 나에게 물이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갔던 공중목욕탕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아들을 절대 물가에 보내지마라.”라는 점쟁이 말에 어머니는 나를 수영장에도 보내질 않았다. 지금도 나는 수영을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 안에 의도적으로 극복과 탈출의 의미를 담은 물을 자주 등장시켰다. 그중 수영장 바닥에 몸을 가라앉게 만든 다음, 빛을 쳐다보는 작업은 희망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슬쩍 보기만 해도 세심한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
<Me, Escape>에서 중요한 건 ‘장소성’이다. 양복을 입은 채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아야 하는 장면, 6천 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홀로 하늘을 쳐다보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응당 그에 걸맞은 장소를 섭외해야 한다. 무작정 원하는 장소에 찾아가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백이면 백 “무조건 촬영 불가”라는 대답만 듣게 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이때부터 3일 간격으로 그곳에 방문한다. 10번 찾아가면, 대략 한 달이 걸리는데, 이쯤 되면 담당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찾아오나?”라는 말을 한다. 이러면 대략 50%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작업계획서를 보여주고, 설명할 기회를 얻는다는 건 이내 작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마다 항상 말하는 게 있다. 셔터 타임이 보통 3개월의 장노출이라는 것.
잊을 수 없는 건 역시 수영장 작업이다. 어렵게 수영장을 섭외했는데, 물을 무서워하다 보니 몸이 물에 가라앉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물속에서 헤매고 있으니까 수영 강사가 “아저씨! 사진을 둘째 치고 먼저 나한테 수영 레슨부터 3개월 받으시지요.”라고 말하더라. 몇 번을 실패하고 시도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간 후 한참이 지나 물결의 파장이 잔잔해질 무렵, 창가 쪽으로 가 수면에 비친 빛을 쳐다보았다. 이처럼 수영장 작업은 내가 가장 힘들게 찍은 사진이다. 이는 갑갑한 내면의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은 나의 의지이자 몸의 표출이며, 나를 극복해가는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촬영 과정이 곧 치유의 과정이라 말했다. 그런데 결과물의 몸짓과 표정은 극적이거나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보통 치유라고 하는 것은 편안함에 이르는 것 아닌가?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선택한 건 어두운 감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초반에는 어두운 내면의 감정을 표출시키는 얼굴에 집중하다가, 점점 몸짓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촬영을 위해 계획하고, 섭외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은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일련의 행위들이었다. 나에게는 어둠에서 빛으로 탈출하는 처절한 노력이자 몸부림이었다.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치유하는 과정은 절대 편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본 사람들이 개인의 정체성, 우리 사회의 남성성 등을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표현할 때 클리셰적인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Me, Escape>를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다음 작업에서 변화를 줄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샐러리맨의 특징인 양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현대 남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Me, Escape>에서 개인과 사회의 모습이 동시에 읽힌다고 하는 듯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다음 작업에선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사회성’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마찬가지로 ‘셀프 포트레이트’ 형식을 이용할 예정이다.

 

정윤순 중앙대 사진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 가족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을 시작했다. 한동안 풍경, 인물 사진에 심취했다가, 최근 ‘셀프 포트레이트’에 관심을 두고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