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고전 산책 _ 데릭 갈론

2021-03-24 · ART_PHOTO

대표 이미지

데릭 갈론(Derek Galon)은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카라바조의 <이를 뽑는 사람> 같은 고전회화를 코믹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로 재해석한다. 그는 자신을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거장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작업을 한다.

 

카라바조의 <이를 뽑는 사람>을 오마주한 <The Dentist - homage to Caravaggio>

 

사진가에 관심 없는 사진가
사진 찍는 데릭 갈론은 사진가에게 관심이 없다. 도서관과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사진작품을 찾아본다는 것은 그에게는 어불성설이다. 이런 독특한 성향은 어릴 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듣는 것이 자신의 연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연주자를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의 좌절감이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다른 사진가의 작업을 봐야 할 때도 있지만, 되도록 가슴에 담아두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고전 회화’ 감상을 즐겨한다. 사실 그는 꽤 힘든 삶을 살았다. 배달원, 병원 도우
미, 청소부, 피자 요리사 같은 다양한 일을 했고, 예기치 않게 삶의 방향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을 맛보았고,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겪었으며, 겸손을 알게 됐다.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한 건 ‘고전 회화’였다.


데릭 갈론은 ‘고전 회화가 없었다면, 현대미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렘브란트, 브라우웨르, 카라바조, 티치아노 등이 남긴 명작을 보며, 그것들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 메시지 전달 방식, 조명 효과, 창의적인 구성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물은 그가 완성한 회화적인(painterly) 작업의 토대가 됐다. 물론 거장들의 화풍을 무작정 따라한 것은 아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했지만, 이후에는 스타일과 조명 정도만 참고했다. 데릭 갈론이 고전 회화를 ‘오마주’ 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거창한 미학적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유명(?) 사진가 반열에 오르게 만들어준 거장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데 의의가 있다.

 

아드리안 브라우웨르의 영향을 받은 <Brouwer painting tavern scene>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오마주한 <Anatomy Lesson>

 

과거와 현대의 만남
오마주 대상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나 규칙은 없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진행한다. 어떤 그림과 마주했을 때 무언가 도전하고 싶은 ‘끌림’이 얼마간 지속되면 작업에 착수한다. 대체로 작품 내용과 형식을 연구한 다음,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한다. 중세 유럽의 종교 미술과 초기 르네상스 미술을 예로 들어보자. 분명 눈높이에서 그려진 것 같은데, 어떤 피사체를 보면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착시처럼 보이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이와 같은 ‘시각 효과’에 마음이 동해 제작한 작업이 바로 <Saint and Sinner>다. 화려하게 치장된 초현실적 옷을 입은 인물을 촬영한 사진에, 시점을 달리해 찍은 테이블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했다. 그런가 하면 <Anatomy Lesson>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단체 초상화와 빛의 대비로 대변되는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됐다.


여느 예술가들이 진행한 오마주 작업은 대부분 진지하다. 그러나 데릭 갈론의 작업은 정반대다. 전체적인 형식만 보고 심각한 고전 회화를 떠올렸다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코믹적인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 덕분이다. 앞서 말했듯, 그는 무작정 기존 작업을 답습하기보다는 분위기는 살리되 코믹 요소를 섞는다. ‘복사본’이 아닌, ‘자신만의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목적도 있다. 아드리안 브라우웨르(Adriaen Brouwer) 그림이 대표적인 예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깨알 같은 장면들이 시선을 끌지 않는가. 데릭 갈론 역시 <Brouwer painting tavern scene>에서 작업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로 직접 등장했다. <Anatomy Lesson>에선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학생도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예술의 가치와 현대 문화의 만남’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러한 장치는 거장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과거 예술이 여전히 우리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는 ‘오마주’라는 전체적인 작업 틀과 개별 작품 속 미장센 모두 ‘고전 회화’의 중요성을 존중하고 상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Derek Galon 거장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고전회화를 오마주하는 작업을 한다. 이와 함께 건축, 결혼, 음악, 인물, 자연, 풍경 등 다양한 사진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artphotographyservices.com

 

스위스 화가 헨리 푸젤리(Henry Fuseli)를 오마주한 <Monstrous deception - hom. to Fus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