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코비치가 진짜 말코비치일까? _ 산드로 밀러

2021-03-24 · ART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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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존경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다. 그것이 종교적인 인물일 수도, 유명 배우일 수도, 스포츠 스타일 수도 있다. 산드로 밀러(Sandro Miller)는 어디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초상사진을 오마주한다. 그는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의 얼굴을 활용(!)해서 사진사에 있어 길이 남아있는 상징적 이미지를 재해석한다.

 

도로시아 랭의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

 

거장의 사진을 오마주하는 이유
산드로 밀러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배 사진가들의 작업을 오마주한다. 어빙 펜이 찍은 소설가 ‘트루먼 카포트’, 유세프 카슈가 찍은 ‘윈스턴 처칠’, 고든 파크스의 ‘워싱턴 D.C.의 흑인 청소부’, 아우구스트 잔더의 ‘복서’, 그리고 다이안 아버스의 ‘쌍둥이’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왜 하필 유명 사진가의 작업을 재해석했을까. 2012년 늦가을, 산드로 밀러는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그는 남편, 아버지, 사진가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사진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느꼈다(실제로 그는 꽤 성공한 상업사진가다). 그러다 문득, 16세 때가 떠올랐다. 당시 어빙 펜이 찍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 배우 셀레스트(Celeste) 사진을 본 후 그의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빙 펜의 신비스러운 초상사진은 산드로 밀러를 사진가의 길로 인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산드로 밀러는 결심했다. 자신이 청소년 시절 보았던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빅터 스크렙네스키(Victor Skrebneski),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 유세프 카슈(Yousef Karsh) 등 작업에서 느꼈던 감정을 젊은 사진가들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뮤즈이자 친구인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와 손을 잡았다. 처음엔 ‘상업사진가’라는 타이틀 탓에 부와 명성을 얻으려 오마주 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작업의 목적은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영감과 열정, 희망을 일깨워준 선배 사진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순수한 의도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고든 파크스의 ‘워싱턴 D.C.의 흑인 청소부(Washington, D.C. Government charwoman)’

아우구스트 잔더의 ‘복서(Boxers)’

 

존 말코비치와 손잡다
산드로 밀러와 존 말코비치는 1990년대 후반 시카고 ‘스테픈울프(Steppenwolf) 극단’에서 처음 만났다. 극단에서 촬영을 하던 중 그들은 예술적 교감을 나눴고, 2013년 산드로 밀러가 존 말코비치에게 오마주 작업을 제안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전, 1년 동안 사진을 연구했다. 배경, 복장, 조명 등을 꼼꼼히 분석했고, (살아 있는) 원작자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존 말코비치 역시 그의 노력에 보답했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까지 캐릭터 분석에 애를 썼다. 세 시간이 넘는 메이크업 시간에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카메라 앞에선 존 말코비치는 마릴린 먼로, 윈스턴 처칠, 체 게바라, 알프레드 히치콕 등 실제 인물에 완벽히 빙의했다. 가끔 독설도 퍼부었다. 산드로 밀러가 지친 기색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다시 한번 양봉업자(리차드 아베돈의 Beekeeper 참고)가 되고 싶어? 당신 제정신(nuts)이야?”라고 말했다. 완벽주의자들이 만났기에 완성도 높은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작업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사진을 재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사진사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 기억 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깨닫길 원했다. 도로시아 랭의 ‘이민자 어머니’를 예로 들어보자. 산드로 밀러는 ‘이민자 어머니’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과거 여성들에게 부여된 과중한 의무와 그들이 겪는 불합리한 일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사진을 넘어선 무언가를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진사에 익숙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민자 어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대다수 사람은 광고와 잡지 1면을 장식했던 연예인 사진을 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드로 밀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연예인(존 말코비치)이 사진에 등장한다면, 사람들이 사진에 보다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연예인 모습에 종종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원작이 궁금해질 테고, 더 나아가 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볼 것이라고 믿었다. 강한 메시지가 담긴 한 장의 사진은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지 않던가. 사진의 시작이 시각적 즐거움이었을지라도, 그 끝은 배움과 앎의 즐거움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Sandro Miller 미국에서 활동하는 상업사진가다. 존 말코비치와의 협업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BMW, 나이키, 니콘,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을 찍은 광고사진은 그를 세계 200대 상업사진가로 이끌었다. 유년 시절, 어빙 펜 사진에 감명을 받고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www.sandrofilm.com

 

산드로 밀러가 그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다이안 아버스의 ‘쌍둥이(Tw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