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났던 역사책
1945년 8월 6일 이른 아침, 평화롭던 일본 히로시마는 미군 폭격기가 투하한 원폭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한순간에 도시 절반이 날아갔다.”라는 생존자들의 말처럼 인구 25만 명 중에서 무려 7만 명이 사망했다. 사진가 김효연에게 이 공적인 역사는 그녀 가족의 사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당시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 정세가 극도로 불안하던 시기에 그녀의 외할머니는 히로시마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조선인 징용자로 일본에 끌려간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원폭 발생 몇 해 전 다른 가족들을 남겨둔 채 부산으로 피난을 왔기 때문이다. 그녀 가족들에게 당시 3만 5천여 명의 한국인이 희생됐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역사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70년 후 김효연은 합천에 있는 ‘원폭피해 복지회관’을 찾아가 피해 생존자들을 담기 시작했다. 무엇이 갑자기 그녀를 작업의 길로 이끌었을까. 북한과 미국의 긴장 국면이 이슈가 되었던 2017년, 뉴스에서는 연신 ‘핵’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작가 가족만의 사적인 역사라고 인식했던 틀이 깨졌고, 그것이 결국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거창하지 않다. 다만 아무 잘못 없이 원폭피해를 당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사람들이 가지는 부정적 인식을 되돌아보게 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들의 후손들이 법적,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것이다. 국내 원폭 피해자들은 전후 일본 정부로부터 현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도일 치료카드’를 받았고, 공식 피해자임을 뜻하는 ‘히바쿠샤(히로시마 원폭피해자를 뜻하는 일본말)’로 인정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내에 거주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 이유는 바로 사회가 그들을 병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생존자들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후손이 잘못될까 걱정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 현재를 살고 있었다.”라는 작가의 말은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처참한 현실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