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얼굴이 중첩돼 만들어낸 이미지가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분명 두 명의 얼굴인데, 한 명으로 느껴질 만큼 이질감이 없다. 이를 통해 윤성필이 말하는 건, 바로 자타불이(自他不二)다.

윤성필은 설치, 조각, 페인팅 등을 통해 삶을 향한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탐구해왔다.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우주의 생성과 변화 원리를 살펴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윤성필 작업의 큰 줄기는 순환하는 에너지를 실험하고, 이를 통해 우주관과 세계관, 인간관 등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 전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열린 <불합리한 인식(Irrational Recognition)>에서 그는 이전과는 다른 결의 작업을 선보였다. 다양한 인물사진을 이용해 자신과 타인이 혼재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는 인간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이다. 윤성필이 이번 작업에 이용한 프로세스는 실크스크린(Silkscreen)과 사진(Photography)을 결합한 ‘실크그라피’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그가 개발한 독자적인 방식이다. 흑백 인화를 통해 얻은 이미지(작가 자신)를 탈색한 다음,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다른 인물의 이미지(인터넷에서 부유하는)를 중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조합함으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타불이(自他不二)다.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 두 사람이 순환의 고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불합리한 인식>에 비유하자면, 소재는 미시적이지만 관점은 거시적(우주관, 인간관)인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자타불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마음과 물질을 포함한 전 우주가 그대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데, 작업을 둘러싼 것들(작업방식, 접근 태도 등) 역시 같은 궤에 있으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작업과 작가의 생각이 정말 합일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윤성필 인간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작품 속 순환하는 에너지 실험을 통해 우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에 주목한다. 영은미술관과 한미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했고, 사치갤러리가 주최하는 ‘뉴 센세이션’ 롱리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아트 프랙티스를 전공하고,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feelyun.com

#1 흑백사진에서 색을 덜어내다
실크그라피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화된 흑백사진이 지닌 톤이다. 톤의 차이(밝고 어두움)가 크면, 탈색(Bleach) 과정에서 이미지가 잘 가려지지 않거나 아예 사라질 수 있다. 왼쪽 사진들은 탈색 약품을 이용해 빛에 반응한 은 입자의 색을 덜어내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먼저, 약품을 붓으로 발라 색을 제거한다(트레이에 3~5ℓ 약품을 채운 후 사진의 색상을 옅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일반적으로 탈색 약품은 물과 혼합해 조색 전 단계에서 사용하지만, 윤성필 작업에선 원액을 이용한다. 물과 혼합하면 농도가 약해져 원하는 탈색 결과물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인화해서 실험한다면, 작업에 적합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2 원하는 만큼 흐려졌을 때 수세하기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지는 점점 옅어진다. 붓으로 약품을 바를 경우 사진 표면에 스크래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천천히 주의 깊게 작업한다. 탈색은 빛에 반응하는 ‘은 입자’의 정보를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검게 그을린 색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는 사진이 빛에 대한 정보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후 실크스크린 작업 시 현상액(Develop)을 이용하면, 이미지를 다시 나타낼 수 있다. 이미지가 원하는 만큼 흐려지면, 수세를 시작한다. 수세를 꼼꼼하게 해야 시간이 지나도 작업이 변색되지 않는다. 이를 빠르게 진행하고 싶을 때는 Washaid 약품을 사용한다.

#3 인화지 위에 실크스크린 이미지를 겹치다
물로 씻은 인화지를 미리 준비한 실크스크린 규격에 맞춰 이미지를 겹친다(실크스크린은 빛을 이용해 구멍을 만든 다음, 구멍을 통해 잉크를 묻히는 방식). 실크스크린 판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를 내려 받아 만들었다. 실크스크린 이미지를 인화지에 고정하기 위해 실크스크린 미디엄(Silkscreen Medium, 아크릴 물감과 혼합해 사용하는 수성 용매. 작업 시간을 늘릴 수 있고, 스크린에서 물감이 마르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과 현상액을 1 : 1로 배합한 용액을 사용한다. 인화지에선 색만 제거됐으므로, 현상액과 만나면 이미지가 복원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수세를 해야 한다. 현상액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수세 방식은 탈색 과정에서의 수세와 같다.

#4 분리되지 않는 두 개의 이미지
이미지를 정착하는 단계다. 탈색 후 정착되지 않은 상태로 빛에 노출되면, 은 입자가 빛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착액과 물을 1 : 4 비율로 섞는다. 이후 수세가 끝나면, 윤성필이 명명한 실크그라피가 완성된다. 실크그라피의 특징은 실크스크린 이미지와 인화된 이미지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토샵에서는 각기 다른 레이어(Layer)를 통해 두 이미지가 겹쳐지지만, 실크그라피는 실크스크린 이미지가 인화된 이미지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