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바치는 위로 _ 박상은

2021-05-20 · ART_PHOTO

대표 이미지

<안에서 자라다>, Digital Print, 100×123cm, 2019

 

박상은은 부산에서 활동 중인 작가다.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에게 사진이란 설치 작업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매체 성격이 짙다. 다시 말해, 사진 그 자체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 매체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박상은은 자신의 설치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이를 사진으로 보여줄 때 생기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작업에 임한다. 가령, 설치작업은 오브제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은 직관적으로 “아! 그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진은 직접 오브제를 보는 것보다 보다 많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프레임 바깥에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난 봄, 해운대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그 안에서 꽃피다>에서 박상은은 ‘결혼과 육아로 인해 사회에서 멀어진 여성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여성이 머무는 공간으로 여겨지는 주방에서 기른 식물과 거미줄에 갇힌 채 자라는 꽃과 식물, 그리고 랩으로 꽁꽁 싸맨 여성의 초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회활동을 그만두고 가정에 들어간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남성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진 않는다. 대신, 지금 세태는 어떤지, 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사회에서 멀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상 뒤에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 드로잉에 담긴 것

박상은은 자신과 동시대 여성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낸다. 그가 작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하는 일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관점을 찾아내고, 그것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후 이러한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드로잉을 한다. 작품을 사전에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작업
노트를 작성한다. 브레인스토밍 결과물 중 적당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테스트에 들어간다. 박상은의 세 번째 개인전 <그 안에
서 꽃피다>에선 거미줄에 둘러싸인 채 자라는 꽃, 철창에 갇힌 식물, 싱크대에서 자라는 식물 등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2 오브제 구입하다
작업에 활용할 오브제 구매를 위해 화훼단지와 꽃 도매시장, 재개발지역, 중고시장 등을 방문한다. 식물을 살 때는 현장에서 배치해보고 사진도 찍어보는 등 신중을 기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정작 스튜디오에서의 느낌은 다를 수 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방문은 필수다. 몇 달 동안 일주일에 두어 번씩 다녀온 듯하다. 창틀이나 싱크대 등의 물건은 중고로 구입하다 보니,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 중고거래까지 꼼꼼히 자주 살펴본다. 적당한 물건이 매물로 나왔는지 계속해서 조사해야만 구상한 작품에 맞는 오브제를 구할 수 있다.

 

#3 스튜디오 촬영 전과 후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여러 오브제를 구상한 대로 스튜디오에 설치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에선 거미줄이 갇힌 채 자라는 꽃과 식물을 연출했다. 거미줄은 물풀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생각한 대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크기가 큰 창틀의 경우 일주일이 꼬박 걸리기도 했다. 꽃과 식물은 특히나 다루기 어렵다.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일주일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도, 햇빛, 수분을 잘 조절해야 한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배치해보면서 촬영에 들어간다. 오랜 시간을 들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땐 앞선 과정을 반복하여 다시 이 단계까지 와야만 한다.

 

#4 랩에 갇힌 여성
꽃과 식물 외에도 랩에 꽁꽁 싸인 인물사진을 함께 전시했다. 등장인물은 전문 모델이 아닌, 작품 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서 출연시켰다. 아무래도 전문 모델이 아니다 보니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
여야 한다. 더욱이 랩 때문에 숨이 막히고 땀과 화장이 범벅이 되다 보니, 사전연습을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번에 얻기가 쉽지 않다. 여러 번 방문해 다시 찍는 경우를 항상 염두에 두고 촬영한다.

 

박상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작업 주제로 다룬다. 부산에서 몇 안 되는 페미니즘 계열 작가다. 해운대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그 안에서 꽃피다>에선 결혼과 육아로 인해 사회에서 멀어진 여성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대안공간반디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후, 신세계갤러리 <멘토링>, 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등에 참여했다. 부산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랩으로 꽁꽁 싸맨 여성의 초상을 사진으로 남긴 <속에서 꽃피다>, Digaitl Print, 73×50cm, 2019

여성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주방에서 식물을 기른 뒤 촬영한 <강요된 자리>, Digaitl Print, 106×80cm,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