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스웨덴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스웨덴의 높은 행복지수, 양성평등, 사회보장 등이 부럽기만 하다. 또한, 깔끔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은 우리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스웨덴의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디자인부터 라이프스타일, 미술, 그리고 사진까지. 스웨덴의 이모저모.
참고 |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엘리자베스 윌하이드, 시공아 트), 『IKEA』(사라 크리스토페르손, 안그라픽스) ,『스칸디나비아 예술사』(이희숙, 이담북스), 『오늘도, 라곰 라이프』(엘리자베스 칼손, 휴)

가구, 인테리어 등 스웨덴 디자인은 간결함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 중
디자인의 뿌리를 찾아서
수년 전부터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가 인기를 끌었다. 스웨덴 역시 가구, 유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특징은 심플함과 안락함이다. 사실 지금의 이런 영광은 장시간에 걸친 국가적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 정책 덕분이다. 일례로 스웨덴 정부는 1845년 대중들의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수준을 높이고자 스웨덴 공예·산업디자인 진흥원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유용한 것이 아름답다’는 기치를 달고 운영되었다.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름답지 않으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불필요하게 화려한 장식과 유행에 민감한 요소들은 모두 배제한다. 이런 간결함과 실용성은 인테리어, 제품, 패션 등 디자인은 물론이고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발견된다. 스웨덴의 디자인 미학을 말하자면 단연코 ‘기능주의’다.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열풍이다. 스웨덴의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모더니즘 특유의 도회적 감각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도전적인 선과 형태, 그리고 고전적 느낌이 드는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북유럽 특유의 차갑고 어두운 날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갈망하는 ‘안락함’을 가구, 인테리어, 패션 등의 디자인에 접목시킨 것이다. 실제로 제품들과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의 디자인 분야 명성의 원인 중 하나로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1, 2차 세계대전의 피해로 집이 부족해지고, 그와 더불어 자신만의 공간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인테리어를 포함한 가구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왔다. 부족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함이다. 또한 가구 사용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자세를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바로 스웨덴 가구 명성의 원동력이다.
전형적인 스웨덴 브랜드로 David Design(daviddesign.se)을 꼽을 수 있다. 실용성과 심플함이 특징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스웨덴과 북유럽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다. 조금 더 진보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도 있다. 바로 Front(www.frontdesign.se/projects)다. 가구인지 예술작품인지 살짝 혼동될 만큼 디자인적 특징을 강조했지만, ‘스웨덴스러움’과 예술적 실험이 결합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스웨덴 인테리어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전반적인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이미 출간된 책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시공아트 펴냄)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인테리어로 집을 꾸미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실현시켜줄 책이다. 책에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된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가구 사진들이 담겨져 있다. 북유럽 인테리어에서 풍기는 아우라와 가치, 그리고 명성 있는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을 한 권 안에 모아 놓았다. 특히 룩북 형식의 구성은 그동안 꿈꾸었던 공간을 실현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읽기 쉽게 기술된 디자인 이론과 기원, 특징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시각적 인식을 넘어 북유럽과 스웨덴의 디자인 특징을 한 번에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덴마크, 핀란드 등 다른 국가들의 디자이너 제품들도 확인할 수 있어서 그 특징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울러 궁극의 디자인을 자신의 집에 실현한 예술가들의 집 내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북유럽스타일 : 북유럽 예술가들의 집, 인테리어, 디자인>(한스미디어 펴냄)을 추천한다. 예술가, 디자이너 등 그들의 디테일한 감각과 내부 인테리어 사진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서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가치도 확인할 수 있다. 창문, 외관, 벽지 등 가구 외에 다양한 인테리어 요소들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실내의 부족한 빛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스톡홀름 도서관

큰 창문과 실내의 개방성이 특징이다. <북유럽 모던 인테리어> 중
포용과 개방을 향한 인테리어
언제부턴가 우리도 유행을 좇는 대신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모든 것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사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능주의 인테리어로 귀결된다. 집을 ‘기능적인 장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하고 내부에 불필요한 것들을 최소화하며, 무엇보다 과시적인 소비나 지나치게 유행을 따르는 것을 배제한다.
‘개방성’ 역시 스웨덴 인테리어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탁 트인 거실, 불필요한 칸막이를 없앤 출입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개방성을 중요시 하는 이유는 접대, 휴식, 업무에 있어서 모두 자유로운 흐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문화적 배경도 숨어 있다. 거실과 각 방이 구분되어 있는 우리네 전통 주택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스웨덴 인테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빛’이다. 일 년 내내 우중충하고 흐린 날씨가 많다 보니, 빛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날씨로 인해 부족한 햇빛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실내에 끌어들일 수 있는지가 인테리어에서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내부는 흰색이나 연한 색상으로 구성한다. 자연의 빛이 내부로 들어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의 건물에서 사람의 키보다 큰 창문을 설치한다. 최대한 많은 자연의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명 역시 스웨덴 디자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다. 이런 특징들을 보면 스웨덴 사람들의 빛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인테리어에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탄성을 자아내는 스톡홀름 도서관을 보면 그 특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외관은 사각형이고 그 안에 원통 형태의 공간이 들어있는 구조인데, 도서관의 외부는 장식적인 디테일이 배제되어 있어 단순함과 깔끔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부는 밝은 느낌을 주는 하얀 천장과 밝은 톤의 바닥으로 돼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을 내부에서 최대한 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유리와 빛
가구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디자인 분야는 유리나 도기 같은 소품들이다. 간결성을 무기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스웨덴 디자인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스티그 린드버그(Stig Lindberg)는 가장 잘 알려진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컵이나 그릇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에 아름다우면서 단순한 패턴을 그려 넣었고, 그것이 그를 스웨덴의 대표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유리로도 얼마든지 빛을 조각할 수 있으며, 태양의 도움을 받으면 색상을 입힐 수도 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유리제품 디자이너였던 스벤 팔름크비스트(Sven Palmqvist)가 한 말이다. 그의 작업 기술 ‘크라카(Kraka)’는 깨끗한 유리의 두 개 층 사이에 그물 모양의 유리 층을 더 넣어 미묘한 질감과 톤, 색상의 부드러운 변화를 연출한 것이다. 역시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감각이 아니라 뛰어난 기술에 의해 탄생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1973년 아바(ABBA)가 발표한 <Ring Ring>의 앨범커버
아바(ABBA)의 이름으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맘마미아2>의 흥행은 70년대와 80년대의 문화와 음악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영국에서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뮤지컬의 성공 역시 마찬가지다. 이 화려한 성공에는 전설과도 같은 이들의 음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바로 4명의 혼성 그룹 아바(ABBA). 1970년대를 주름잡은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바로 언어라 할 수 있다. 이들을 종종 영국이나 미국의 그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의 영어 가사는 듣는 이들이 쉽게 곡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들었다. 누구나 쉽게 좋아할 수 있는 보편성, 지극히 포용적인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스웨덴을 여행하다!
가보고 싶지만 너무 먼 스웨덴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전시 <헤이, 스웨덴!>이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실용적인디자인을 추구하는 스웨덴 브랜드들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실제 스웨덴의 가구, 장난감, 패션 등의 제품을 직접 만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스웨덴의 다양한 브랜드들을 통해 확인한 그들의 저력이다. ‘브리오’와 같은 아이들 인기 장난감 브랜드와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이 스웨덴 제품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점은 단순히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트장처럼 꾸며진 여러 브랜드들의 디스플레이다. 당시의 실제 무대 의상을 재현한 그룹 아바의 섹션은 잠시나마 그 시절의 스웨덴으로 시간이동을 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지로만 접했던 스웨덴의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도기와 유리, 가구 등 디자인 제품들이 다양하게 설치 됐으며 문학과 같은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6월 30일 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케아는 단순한 패턴과 간결성, 합리적인 가격대를 지향한다.
가구 공룡 이케아부터 패션 브랜드 H&M까지
푸른 하늘에 네 글자로 된 노란색 알파벳 로고. 스웨덴의 국기를 모티브로 삼은 이케아의 브랜드 로고다. 1943년 설립된 이케아는 2019년 현재 전세계 35개국에 253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우리나라에도 5년 전 경기도 광명에 첫 매장을 열었고, 경기도 고양에 이어 또 다른 매장을 계획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케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디자인은 물론이고 콘텐츠와 철학 등 모든 부분에 있어 ‘스웨덴스러움’을 표방한 것이다.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디자인과 조립식 가구라는 점은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를 선호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합된다. 또한, 간결하면서도 부드럽고 완만한 가구의 선은 보편적인 호감을 얻으며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제품으로 각인되었다. 해당 국가에 맞는 제품을 매장에 비치하는 국가 맞춤형 디자인 전략 역시 적중했다. 다양한 국가의 이케아 매장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다면, 국가별 주거 형태에 맞춰 ‘스웨덴스러움’을 대입시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현재는 소유하지 못해, 이상적으로 갈망하는 가구 스타일을 배치하여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면서 이케아의 디자인은 곧 스웨덴을 대표한다는 인식이 당연스럽게 생겨났다.
스웨덴의 또 다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영역들은 의외로 많다. 패션브랜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SPA브랜드인 ‘H&M’이다. 저렴한 가격대에 빠르게 소비되는 유행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10대와 20대를 주 타깃으로 한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무엇보다 가격대가 합리적이며, 그 외에도 파티 의상, 체구가 큰 소비자들을 위한 플러스(Plus)와 임부복 등 다양한 소비자들을 두루 공략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도 있다. 바로 볼보 (Volvo)다. 볼보는 ‘Designed around you’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동차 디자인을 개발한다. 초반에 각이진 자동차의 외형 때문에 특정 연령층 만을 위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90년대 이후 현대적인 디자인을 도입해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아직까지는 기술력이 탁월한 독일 브랜드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직선적인 선에서 탈피해 완만한 곡선 형태의 외형이 특징인 T5, V60 등 특유의 멋스러운 디자인이 젊은 층의 호응을 받으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 외에도 세계 최초로 자동차 안전벨트를 개발했다는 사실과 자동차 외부에 에어백을 설치하여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보행자를 보호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들과 협업으로 탄생한 <2018 ABSOLUT LOVE>
병을 감싼 미학
‘앱솔루트’는 스웨덴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다. 술의 이름만큼이나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병 디자인이 매력적이라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텁다. 길고 동그란 병의 외형은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수시로 다른 옷을 입히는 외지의 그래픽 디자인이 특징이다.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스웨덴의 문화를 하나의 병에 담자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는 ‘창의성’이라는 모토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체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유명이든 무명이든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이들과 협업으로 진행한 디자인 프로젝트는 앱솔루트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문화라는 무형의 존재가 유형의 디자인으로 변신하는 앱솔루트의 아티스트과 함께한 협업 사례로 ‘2018 ABSOLUT LOVE’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모든 사람은 출신과 성별, 성적 지향성에 관계 없이 평등하며,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는 가치에서 출발하였다. 이 전략은 단순한 술병이 아니라 작품으로 느껴지는 앱솔루트 제품의 탄생 배경이다. 디자인의 전략적 특징을 생각하면 스웨덴의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문화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단 한 병의 제품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라곰 스타일’은 웰빙과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도, 라곰 라이프> 중
라곰, 적당히 거시기혀요
적게 소유하고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小確幸)’,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심신 상태를 추구하는 프랑스어 오캄(Aucalme),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 …. 최근 몇 년간 국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강타한 단어들이다. 저마다 기원은 다르지만, 큰 욕심 안 부리고 지금에 만족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자는 것이 공통의 목표다.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살자’고 말하는 이러한 트렌드로 인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 책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직장 그만두고 평소 꿈꾸던 일하기 등이 그 예다. 스웨덴의 라곰(Lagom)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고향인 스웨덴보다 그 밖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는 라곰에는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딱 적당한 만큼만’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불충분하다든가 검소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다. 균형감, 단란함, 절제 등을 떠올리면 된다.
스웨덴 문화에 깊이 배어 있는 개념인지라 외부인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다음 표현을 본다면 한쪽 무릎을 '탁'치게 될 것이다. 바로 ‘거시기’한 행동방식. 살사 소스가 얼마나 매운지, 술은 얼마나 마셨는지,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먹고 싶은지 등을 표현할 때 ‘라곰’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면 스웨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따 거시기혀요’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라곰은 양(Quality)뿐만 아니라 삶의 질(Quantity)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중용이 최고다(Lagom är bäst)’라는 스웨덴 속담이 있다. ‘적당한 것이 제일 좋다’라고 해석된다. 적당량만 지킨다면 누구나 떡 한 조각씩, 그것도 자신에게 딱맞는 떡을 먹을 수 있다는 철학적인 접근이다. 그래서일까.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사회보장, 삶의 질, 양성평등 등이 보장되기에 라곰스럽게 산다면, 자연히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발견할 수 있고, 이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근무시간에 당당히 피카(Fika, 다과를 즐기면서 쉬는 시간)를 갖는 것도, 퇴근후에 이메일과 SNS 알람을 받지 않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중용의 흥미로운 사례들
‘알레만스레텐(Allemansrätten)’은 사람들이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권리다. ‘방해하지 말고, 파괴하지 말라’는 문구로 요약되는 이 권리는 전반적인 삶을 위한 진리의 주문 ‘만트라(Mantra, 깨달음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서 외우는 언사)’로도 나쁘지 않다. 이는 야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관습에서 비롯됐다. 제정법에도 누구나 자연에서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다는 말이 두 번 언급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연을 자유롭게 즐길 권리가 일종의 인권이라고 생각해서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위법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누구도 받들어 모시지 않는다. 나이와 사회계층,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허물없이 상대하며, 상사와 직접 부딪치는 일도 잦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내 목소리를 낼수 있도록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회사 어디서든 관리 단계가 많고, 의사소통 방법이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디자인, 품질 그리고 지속 가능성
‘라곰 스타일=미니멀리즘’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이 궁핍함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라곰 스타일’은 웰빙과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스웨덴 예술가 칼 라르손(Carl Larsson)은 “집은 죽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집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과정을 잘 묘사한 말이다.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 베르구(Karin Bergoo)가 만든, 20세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영향을 준 홈스타일을 보면, 꾸미지 않은 수수함과 아늑함, 친근함, 화사함 등이 눈에 띈다. 스웨덴 사람들은 계절과 더불어 살기 위해, 내부와 외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돌, 리넨, 목재, 코르크 같은 천연 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이들은 디자인과 품질, 지속 가능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들이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대부분, 누가 봐도 분명한 유행에는 관심이 없다. 색 역시 회색과 흙빛을 고집한다. 라곰스러운 사고방식은 스웨덴 사람들이 차분하고 요란하지 않은 옷차림을 고집하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누구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곰스러운 방식은 날씨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이다. 추위 앞에서 스타일리시함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세련된 멋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크, 양모 혼방, 질 좋은 니트 등을 이용해 레이어 연출만 잘하면 충분히 멋스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계효용체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서비스든 상품이든 더 많이 소비할 때 추가 이익은 줄어든다는 의미다. 사과 열 개를 예로 들어보자. 하나를 먹을 때마다 하나 더 먹고 싶은 욕구가 줄어들어서 결국엔 포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돈과 시간 등은 많이 소비할수록 포화 단계에 더 가까이 도달한다. 하지만 모두가 절제하면서 소비한다면, 혜택을 최대화해서 모두에게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라곰은 처음이라서
가심비(價心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킨포크(Kinfolk,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 속 소박한 삶을 지향) 등의 트렌드는 익숙한데, 여전히 ‘라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도, 라곰 라이프>(휴 펴냄)를 펼쳐보길 바란다. 이 책에는 스칸디나비아식 행복, 서로를 배려하며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마음 챙김, 몸의 균형 등 라곰스러운 기쁨과 경험들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저자 엘레자베스 칼손(Elisabeth Carlsson)은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성대한 파티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친구와 따뜻한 음료 한 잔만 마실수 있으면 족하다. 점심시간에 공원을 거닌다든지, 얼굴에 닿는 따스한 햇볕을 만끽한다든지, 또는 창턱에 심어 놓은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이야말로 만족감을 주는 충분한 라곰”이라고. 시간 관리를 통해 직장과 가정을 분리하는 방법, 클리마츠마르트(Klimatsmart, 환경을 생각해 식재료를 고르는 것)를 바탕으로 요리하고 음식을 먹는 방법, 신나게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지속 가능하게 집을 가꾸는 방법 등을 보고 실천하다 보면, 우리 삶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가 채워질 것이다.

만약, 스웨덴을 벗어난 ‘라곰’이 궁금하다면,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곰>(책읽는수요일 펴냄)을 추천한다. 행복한 한때, 그럴듯한 상황 혹은 작품이 아니라, ‘라곰’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영감과 동기, 재능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영국 브리스톨의 엘리엇과 샘(Elliot Jay Stocks & Samantha Stocks)의 주도로 시작됐으며, 세계 각지에서 ‘라곰’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박한 행복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소개하고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라곰스러움’과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브루노 릴리에 포르스는 새를 우울함으로 상징하는 대상으로 표현했다.
예술의 흐름, 신화화된 정체성
스칸디나비아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 독립 분위기가 활발했던 19세기 후반을 주목해야 한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나라들이 모인 스칸디나비아(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에도 공통적인 예술 흐름이 있었다. 1880년대 북유럽 예술의 고립은 유럽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침입을 막으면서 노동자 계급, 현대생활의 풍습과 집 밖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등장시켰고, 젊은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 못 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1890년대 고립주의와 민족주의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토속적인 주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화풍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배웠던 사실주의를 따라가진 않았다. 대신 깊은 주관성, 비자연적인 색상, 형식적 패턴 등을 내세웠다. 변화의 정확한 시기는 예술가와 나라마다 다르지만, ‘변화’ 자체는 일관성을 가졌다. 국제주의와 사실주의 시대가 민족주의와 상징주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느낌을 준 안데르스 소른
기실, 변화의 흐름은 프랑스 예술정책에서 기인한다. 젊은 예술가들의 메카였던 파리에서 북유럽 예술가들은 고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예술을 만나게 된다. 흔히 해외에서의 경험은 사람을 개방적으로 만든다지만, 북유럽 예술가들은 예외였다. 오히려 오로지 북유럽예술이라는 편중된 민족주의로 그들을 이끌었다. 또한,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 탓에 산업화가 늦어진 스칸디나비아는 사실주의와 실증주의에 반감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서는 영적인 면에 집착하게 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의 민족주의와 들어맞았고, 상징주의와 신비주의는 북유럽의 정체성을 신화화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스웨덴 예술가로 브루노 릴리에 포르스(Bruno Liljefors)가 있다. 그는 19세기 후반 자연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새의 이미지를 서술적인 사실주의에서 우울함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옮겼다.

단순한 선과 맑고 투명한 색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칼 라르손의 <In theo crner>
플래시백! 스웨덴의 인상주의
프랑스의 예술 사조를 멀리하던 북유럽이었지만, 흥미롭게도 북유럽 예술가들은 일찍이 인상주의를 발견했다. 1870년대의 일이다. 핀란드 출신 베른트 린드홀름(Bernd Lindhom) 덕분이었다. 그는 파리를 방문했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상주의를 새롭고 과격한 ‘색조 페인팅 그룹(Tonal Painting Group)’이라고 칭했다. 이 그룹은 “자연 속 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들이 받아들이는 모든 변형을 통해 대상의 여러 부분에 일어나는 색의 연구다. 이것은 우리의 눈을 통해 인식된 것으로 빛과 공기의 변화로 말미암은 결과, 즉 색조 명암이다.”라는 말처럼 주제보다는 색을 더 중요시했다. 분위기상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은 인상주의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스웨덴 출신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 칼 노르드 스터룀(Karl Nordström), 칼 트래고드(Carl Trägårdh), 페르 엑크스트룀(Per Ekström) 등은 인상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중 프랑스 예술에 나타나는 도시 생활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안데르스 소른의 작품은 ‘3차원 입체를 희생시키지 않고, 과격한 인상주의자처럼 물리적 존재의 객체를 벗겨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1880년대 후반, 북유럽예술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장 모레아스(Jean Moréas)의 ‘상징주의 선언(Manifeste du Symbolisme)’처럼 ‘현실을 해석하고, 상징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예술가의 임무라고 여겼다. 꿈, 종교, 최면 등이 작업에 포함됐고, 이미지의 시간적인 차원은 특정한 순간에서 영원한 것으로 대체됐으며, 태양은 우울한 황혼의 분위기로 묘사됐다. 눈여겨봐야 할 작가로는 스웨덴의 화가 리카르드 베르그(Richard Bergh)가 있다. 그는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 어두운 꿈들의 괴로움과 기쁨을 본능에 따라 빛과 분위기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의 상징주의는 낭만적으로 발전했다. 이를 대변하는 건 우울한 분위기를 내뿜는 당시의 풍경화다.

북유럽 미술, 그것이 알고 싶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포털사이트에서 몇 번 클릭만 하면 다양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다. 관련 도서도 ‘가물에 콩 나듯’ 출간된다. 하지만 단비 같은 책이 있으니 바로 <스칸디나비아 예술사>(이담북스 펴냄)다. 따끈한 신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시대 미술을 다룬 것도 아니지만, 스칸디나비아 미술을 이만큼 정리해놓은 책도 없을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자 생의 대부분을 스칸디나비아에서 보낸 저자 이희숙이 스칸디나비아의 민족낭만예술을 정리했다. 스칸디나비아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민족주의·상징주의 미술을 풀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또한, 곳곳에 세계 미술사 중심에 있던 프랑스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어 당시 유럽의 미술 경향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일화도 담겨있다. 비록 많은 작가를 다루지 않아 개략적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북유럽 미술의 몽환적이고 우울한 분위기가 어디에서 기이한 것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은행나무 펴냄)은 위의 책보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스칸디나비아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간 북유럽 미술관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소소하게 풀어내 에세이·여행기 성격이 짙다. 북유럽 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미술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과 상황, 길을 걷다 마주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미술로 연결하는 센스까지 느낄 수 있어 지루하지 않게 북유럽 미술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저자 최혜진의 글은 지극히 ‘라곰’스러워 자기 앞가림하는 존재로, 밥벌이 노동자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이중 삼중 역할을 해내느라 하루하루가 버거운 사람들, 그럼에도 묵묵하게 나다움을 잃지 않고 일상을 긍정하는 시선의 힘을,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들을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듯하다.

(위) Japan (아래) Private. ‘스웨덴 다큐멘터리 사진의 아버지’ 리스터 스트룀홀름의 작업


아기의 탄생 과정을 담은 천재 사진가 레나트 닐슨 ⓒLennart NilssonTT Newsagency
미술 흐름과 비슷한 스웨덴 사진
미술만큼 베일에 가려진 것이 스웨덴 사진이다. 기껏해야 떠오르는 것이 멜랑콜리와 초현실주의다. 하지만 앞에서언급한 19세기 말~20세기 초 스칸디나비아 예술의 흐름을 파악했다면, 사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 역사의 반복을 보는 것 같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상징주의 및 신비주의로 전환된 것처럼, 사진도 다큐멘터리에서 초현실주의로 흐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분야에선 스웨덴 사진의 아버지 크리스터 스트룀홀름(Christer Strömholm)을 필두로,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으로 이주해 아이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한 안나 리브킨(Anna Riwkin), 아기의 탄생 과정을 담은 천재 사진가이자 스웨덴의 1세대 포토저널리스트로 불리는 레나트 닐슨(Lennart Nilsson), 스웨덴 북부지역의 삶을 기록한 수네 존슨(Sune Jonsson), ‘우울한 코미디’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라르스 툰뵈르크(Lars Tunbjörk)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감각적인 흑백 사진으로 여전히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안데르스 피터슨(Anders Petersen), 창백한 몸과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는 듯한 관능적인 초상화로 유명한 ‘스웨덴 사진의 전설’ 투이야 린드스트룀(Tuija Lindström)도 눈여겨봐야 하는 사진가들이다. 스웨덴 사진의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의 사진에 우울한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이는 기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유럽은 백야 기간을 제외하면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당연히 계절의 혹독함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Fotografiska 전시 매니저인 요한 피크너(Johan Vikner)에 의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어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파고드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는 게 이해가 간다. 또 다른 방법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도피와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스웨덴 초현실주의 사진이 유명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스웨덴 사진가들의 예술적인 호기심도 한 몫 한다. 그래픽, 리터칭, 합성 등을 사진에 적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현실을 깨닫고 극복하는 데 방점이 찍힌 ‘초현실주의 사진’은 상징주의와 비슷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Erik jojansson, 2019 / Full Moon Service, 2017
상상 그 이상의 사진
스웨덴 초현실주의 사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Impossible is Possible>이 바로 그것. 주인공은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이다. 그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마우리츠 에셔(Maurits Escher)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에릭 요한슨은 디지털 합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작품의 모든 요소를 직접 촬영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세계를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심한 표현력은 사진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포토샵을 이용한 이미지 조작은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Impossible is Possible>은 에릭 요한슨의 전 세계 최초 대규모 전시다. 대형 작품부터 메이킹 필름, 스케치, 촬영 소품 등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어린 적 상상, 꿈꾸던 미래’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다니는 호텔, 배 위에서 구워 먹는 생선 등 누구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수도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또한 ‘조작된 풍경’에서는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 기이한 풍경들을, 그리고 ‘어젯밤 꿈’에서는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고,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악몽을 묘사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에릭 요한슨은 마니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는 ‘우리 모두 한 번쯤 상상해 보았거나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작품에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의 세계를 사진으로 실현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그의 작품들은 6월 5일부터 9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공개된다.

Torbjørn Rødland, Golden Tears, 2002,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Gifts form the Trustees of the Corcoran Gallery of Art, 2018
‘사진과의 상호 작용’을 이야기하는 노르웨이 사진가 토르비욘 로드랜드
동시대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
동시대 미술에서 북유럽 감성은 작업에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현재 뉴욕 ‘Scandinavia House’에선 그린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올란드, 핀란드 출신 동시대 작가 24명의 작업을 총망라한 <Nordic Impressions>가 진행 중이다. 사진, 설치,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구성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시다. 스웨덴 작가로는 라곰스러운 실내 공간을 고즈넉하게 그려내는 마마 안데르손(Mamma Andersson), 동화 같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 섹슈얼리티 등을 다루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나탈리 뒤버그(Nathalie Djurberg) 등이 참여한다. 이외에도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을 통해 과학, 건축, 자연, 철학, 환경 등을 논하는 덴마크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조각과 설치를 통해 공간과 기억, 지각 등을 실험하는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사귀다도티(Katrín Sigurdardóttir), ‘슬픔’을 감미롭고 매혹적으로 풀어내는 퍼포먼스가 매력적인 아이슬란드의 라그나 캬르탄손(Ragnar Kjartansson) 등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분명 구성이나 형식은 난해하고 파격적인 동시대 미술 성격을 띠고 있지만, <Nordic Impressions> 속 작가들의 작품은 다분히 ‘스칸디나비아’스럽다. 많은 작가가 그들 선배가 이야기했던 주제 - 신화, 빛과 어둠, 자연과 민속 등 - 를 작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관계, 개인의 공포와 정신적 충격, 여성의 권리, 이민 같은 최신(?) 이슈들을 다룬 작업도 만나볼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있지만, 다른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같은 주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색채와 구성적 감각을 보여주는지 등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