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사진가 트리니다드 카릴로의 사진 속 식물에게선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밤에 촬영된 식물은 마치 ‘하나의 정령’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Salve Cthulu, 2019

Kensaban II, 2018
망각 당한 생명력
식물도 빛을 낼 수 있을까. 어둠을 배경으로 마치 자연을 수호하는 정령처럼 환하게 빛나는 식물의 자태가 인상적이다. 마치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잠시 잊고 있던 자연의 숭고한 생명력도 느껴진다. 이 사진들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중견 사진가 트리니다드 카릴로(Trinidad Carrillo)의 작품이다.
그가 전작에서 주목했던 대상은 주로 아이들이었다. 그들 역시 마치 종교화 속 인물처럼 신비롭고 성스러운 대상으로 표현됐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식물로 옮겨갔을 뿐, 담고 있는 궁극적인 메시지와 의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연약하고 순수한 대상들에 내재된 가치와 생명력을 이끌어 내서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에너지를 사진으로 담는다는 점에서 흡사 마법처럼 보인다.
그가 2017년 이후 작업 중인 시리즈는 <Nests>와 <Magic Woods>이다. 식물을 피사체로 해서 진행된 이 작업은 그녀가 양귀비를 별 생각 없이 키우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됐다. 스웨덴에서 양귀비라는 작물을 키울 수는 있어도, 그것의 잎이나 열매를 취득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그녀 역시 처음에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어떤 품종은 아예 심거나 키우는 것조차 금지되었는데, 그런 사실이 그녀는 다소 어이 없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미 인간이 지구에 살기 전부터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로 이 땅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트리니다드의 작업은 인간들이 습관처럼 망각하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Orchroma Pyramidale, 2018.
마법의 근원
식물 예찬이라는 그의 메시지를 사진으로 잘 구현시켜주는 요소는 바로 ‘어둠’이다. 이는 어린 시절 처음 접한 암실에서의 추억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하얀 인화지에 서서히 상이 맺히는 암실에서의 인화 과정은 어둠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그대로 작업 과정에 옮겼다. 세부적인 프로세스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촬영된 식물로부터 생명력과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이유다. 그리고 '어둠 속의 밝은 빛은 곧 신성함’이라는 작가의 사고방식은 스웨덴 사람들이 가진 빛에 대한 전형적인 가치관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페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후 11세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갔다. 그래서일까. 스웨덴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인장이 등장한다. <Magic Woods>의 일부 사진 역시 작가의 고향인 페루와 온두라스, 그리고 브라질 아마존 등지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밀림 속에 사는 실제 무당과 몇 개월간 동거동락 하면서 그에게서 들은 독특한 전설들을 바탕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식물의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유다.
‘생명’, ‘마법’, ‘전설’, ‘무당’ 같은 단어들은 사진이 지닌 종교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동시에 식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관념이 얼마나 견고하고 신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Wachuma and Vilca,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