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도서관, 박물관 같은 문화적 공공장소들의 내부 공간을 ‘엄격하게’ 사진에 담아온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진행 중이다. 그의 초기작과 신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선 사진 속 대상들의 시각적 면모와 공간 존재의 역사적인 깊이를 함께 엿볼 수 있다.

<Muzei sovremennogo iskusstva “Garaj” Moskwa VI, VII & VIII, 2017>, C-print, 180x145.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 Kunst, Bonn
공간과 시간의 만남
현재 ‘국제갤러리 부산’을 수놓은 작품은 1989년과 2017년 사이에 제작된 것들이다.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된 각각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의 흐름’이다. 주지하다시피, 칸디다 회퍼는 사진을 통해 공간의 역사와 시간 흐름에 의한 미세한 변화에 주목하는 작가다. 보는 이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단연 시공간을 차갑게 절단한 ‘유형학적 형식’이다. 그러나 칸디다 회퍼 작업의 매력은 사진 곳곳에 숨어있는 디테일이다. 정갈하게 그리고 커다랗게 프린트된 사진 속에서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구성 요소들을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 여행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인상적인 건 러시아 모스크바의 타임라인이다. 먼저, 트립틱 구조의 <Muzei sovremennogo iskusstva “Garaj” Moskwa VI, VII & VIII, 2017>은 1968년 고르키 공원에 문을 연 레스토랑 ‘사계(Vremena Goda)’를 리노베이션해 만든 ‘차고 미술관(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낡은 벽돌과 새로 만든 계단을 마주하고 있으면, 묘한 구조적·정서적 대조뿐만 아니라,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 콘스탄틴 멜니코프(Konstantin Melnikov)가 1920년대 후반 완성한 ‘멜니코프 하우스(Melnikov House)’를 담아낸 작업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방가르드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곳에서 탄생한 <Dom Melnikova Moskwa VIII, 2017>의 특징 역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흥미롭게도 이를 가능케 한 건 유리창 너머 보이는 현대적인 풍경이다(유심히 살펴보시라!).

<La Salle Labrouste La Bibliothèque de l'INHA Paris II, 2017>, C-print, 180x208.7cm
부재의 수사학
평소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장소에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칸디다 회퍼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사진에 인위적으로 개입(≒인공조명, 포토샵)하는 것도 지양한다. 이는 공간의 ‘특성(구조, 기능, 목적, 분위기 등)’과 사람들이 공간에 남긴 ‘흔적(개입 혹은 사용으로 인한)’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작업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사진(공간) 안에서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사이를 유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잠시 그의 사진 속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대부분이 공간을 관찰하는 대신, 의미 없는 사람의 몸짓에서 특정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시간을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
칸디다 회퍼가 ‘문화적 공공장소’와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쾰른의 터키 이민자’ 작업(1970년대 후반)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작가는 상점과 아파트 같은 이민자들 터전에서 터키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선,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라는 말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공간 그 자체를 넘어, 공간이 어떻게 지나온 시간을 머금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지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 칸디다 회퍼에게 ‘공간과 사람’에 관해 물었더니, “공간은 사람에 의해 형성되고, 공간은 사람을 형성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Siegerlandmuseum Oberes Schloss Siegen, 1991>, C-print, 20x30cm

<Folds, 2016>, Dye transfer print, 54x62.9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 Kunst, Bonn
건조하게 독백하라
한때 “오래 보아야 OOO 하다.”라는 문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칸디다 회퍼의 작업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에게 사진이란 ‘공간의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음미할 수 있도록, 시간을 멈추게 하는 존재’다. 액정 위에서 사진을 1초 만에 넘기는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그야말로 ‘느린 사진’이다. 칸디다 회퍼는 “공간과 시간은 포착될 수 있다. 그것은 사진의 능력이다. 하지만 촬영 전에 그 공간을 체험해야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촬영은 꽤 급박하게 진행된다. 사람들이 부재한 시간이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태양의 움직임도 늘 일정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탄생한 사진을 본 관객이 셔터를 누르던 당시의 작가 감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와 관련, 칸디다 회퍼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사진에 초대할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공간은 사람을 형성한다.”라는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종합하자면, 작가는 ‘뒤셀도르프 학파’의 건조한 형식을, 보는 이는 공간을 독백적으로 탐구하는 ‘오토슈타이너트’의 태도를 따르는 모양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소형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으레 ‘유형학적 사진’ 하면, 비슷한 종류와 형태를 모아놓음으로써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기에 대형 프린트 사이에 소형 사진을 병치할 경우, 유형학적 형식이 주는 효과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하게 되지만, 작가에게는 기우에 불과하다. 사진이 찍히는 방식만 다를 뿐, 완성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대형 프린트와 마찬가지로 세심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형식에는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보다 빠르게 사진을 찍고, 누구보다 빠르게 사진을 보고 넘기는 오늘날,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Candida Höfer>는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11월 8일까지 계속된다.

<Musée du Louvre Paris III, 2005>, C-print, 180x21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 Kunst, Bo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