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가 남긴 상흔을 기록한 전재홍의 <제국의 휴먼>이 토포하우스와 갤러리 탄에서 열렸다. 역사를 직시하게 만든 그의 전시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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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거부죄로 단종된 장기진, 전남 소록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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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와 세균전 2중 피해자 김옥자(金玉子), 조선족 중국인, 중국 길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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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대학살 생존자 중국인 예취평(倪翠萍), 중국 남경,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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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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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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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히로시마 피폭자 위패, 경남 합천, 2018
731부대의 생체실험 생존자, 연해주로 강제이주 된 조선인 후손, 그리고 난징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인물까지. 전재홍이 포착한 사람들의 면면 때문일까. 지난 6월에 열린 <제국의 휴먼>을 관람하는 동안 발걸음이 무거웠다. 피사체가 된 인물들의 자세는 담담했지만, 카메라를 응시한 그들의 눈빛은 마치 역사를 망각하지 말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흔적을 기록한 작가의 결과물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전재홍의 전시는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을 기록한 <제국의 휴먼>과 일제가 한반도에 지은 시설들을 담은 <제국의 평야>, <제국의 바벨탑> 등 3개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손과 발이 절단된 인물을 촬영한 사진은 작가의 메시지와 역사에 대한 관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전재홍은 “할아버지의 두손은 뭉떵 잘려있었고, 두 다리는 의족이었다. 할아버지가 너무 말라 등에 가볍게 업고 촬영장소로 이동했는데,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라고 한다. 그의 말을 통해 슬프고 참담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완전히 종료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인물 작업 외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은 ‘합천원폭피해자 복지회관 히로시마 피폭자 위패’였다. 누군가 피를 흘리거나 잔인한 모습이 담긴 사진은 아니었으나, 프레임을 채운 희생자들의 이름은 무고한 사람들이 흘렸을 눈물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는 수많은 사람에게 물리적·정신적 생채기를 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에도 아픈 흔적을 남긴 시기였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건 <제국의 바벨탑> 시리즈다. 얼핏 보면, 독일의 베허부부가 낡은 산업 건축물과 물탱크 등을 유형학적으로 촬영한 작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독일의 그것과 달리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급수탑들은 일본이 조선의 쌀과 각종 물자를 수탈하고자 연결한 철도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전재홍이 담은 급수탑은 단순 콘트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일제 야욕의 상징물인 셈이다. 탑의 조형적인 특징과 대조되는 역사적 배경 탓에 허가 찔리는 기분이며,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자세가 신중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전재홍은 “우리는 해방을 맞았으나 반도는 반 토막, 경제는 쭉정이처럼 되었다.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의 침략사’를 사진으로 썼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간절한 바람 덕분일까. 전재홍의 작업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는 역사라는 것이 몇 줄의 글에 불과하지만, 한 국가와 개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절망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국의 휴먼>은 숨길 수 없는 일본의 잔인함과 앞으로도 아물기 힘든 과거의 흉터를 많은 이에게 상기시킨 전시였다.
전재홍 건축과 역사에 주목해 다양한 연구 및 사진 작업을 병행한다. 지난 6월 개인전과 함께 포토북 <Little Boy>를 펴냈다.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한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