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에 물들다 _ 존 오페라

2021-08-19 · ART_PHOTO

대표 이미지

19세기 사진술에서 영감을 받은 존 오페라의 작업이다. 수많은 점과 선이 프레임 안을 수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그중 2017~2018년 작업은 ‘기하학적 패턴’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포토샵 브러시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실제로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제격이다.

Oval With Lines, 2017, cyanotype, acrylic, and vinyl paint on canvas in artist frame, 33 x 26 inches

Oval With Grid, 2017, cyanotype, acrylic, and vinyl paint on canvas in artist frame, 46 x 36 inches

 

점과 선의 향연

존 오페라(John Opera)의 작업은 ‘점과 선의 향연’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점들이 흩어져서 물 위에 퍼져 있는 기름방울 같은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스터리 서클’ 같기도 하다. 사진처럼 보이기보다는 마치 추상회화를 연상케 한다. 반면, 선이 만들어낸 형상 역시 그리 복잡하지 않다. 미니멀하지만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미지가 시선을 붙든다. 언뜻 격자무늬의 배드민턴 라켓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토마스 영(Thomas Young)의 이중 슬릿(Double Slit, 빛의 파동성을 보여주는 간섭 효과를 발견했던 실험 장치)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날로그로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1842년 영국의 존 허셜(John Herschel)이 발명한 시아노 타입을 바탕으로 한다. 형광등(Tube lights)과 레이저(Lasers)를 발광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패턴을 만들어내는 두 개의 발광 도구를 암실 내에서 활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완성한다. 전구와 캔버스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형광등을 이용하면, 유제에 피사계 심도를 묘사한 듯한 흔적이 남는다. 2차원적인 요소에서 공간감이 느껴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레이저를 이용하면 렌즈 위에 묻어 있는 먼지 입자가 유제에 기록된다. 뭐니 뭐니 해도 화룡점정은 이렇게 탄생한 독특한 패턴 위에 레이어(페인팅)를 덧씌우는 것. 전경(Foreground)과 배경(Background)을 구분하면 착시효과로 인해 이미지의 추상성이 더욱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Double Slit, cyanotype, acrylic and flashe on canvas in lacquered artist frame, 46 x 36 inches

 

추상, 사진을 생각하다

존 오페라의 작업은 사진의 정의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렌즈를 통해 만들어진 사진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표면 사이의 한계점’ 그리고 ‘관찰과 상상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존 오페라는 19세기 사진술(시아노 타입)을 이용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데 고착된 것들 - 예를 들어, 아날로그 시절 사용했던 화학반응, 사진은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 등 - 을 발전시키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포토샵 브러시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업이 실제로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제격이다. 여기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도도 담겨있다.

 

다분히 ‘사진적’이다.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진의 본디 정의와 아무런 거리감이 없다.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추상적인 이미지를 제작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추상예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것을 끌어내어 자신만의 해석을 하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 역시 현실과 관찰이라는 사진의 재현적 요소 너머의 것을 상상하게끔 한다. 이는 흔하디흔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진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경험적이고 물리적인 정의가 어디서 시작되고 끝이 나는지를 파헤쳐 보라는 뜻일 테다. 물론, 시공간을 압축해 평면으로 표현하는 사진의 전통적인 가치와 매력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다만, 그가 ‘매체 실험적인 사진’을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의 정의가 확장되고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시대에, 형식적인 것에만 몰두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가능성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린다면, 머지않아 분명 사진은 현대예술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John Opera 미국 출신. 19세기 사진술을 이용해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뉴욕 주립대학에서 학사를,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University of Buffalo에서 사진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johnopera.com

 

Double Lens, cyanotype, acrylic and flashe on canvas in lacquered artist frame, 21 x 17 inches

Fresnel Radial I, cyanotype, acrylic and flashe on canvas in lacquered artist frame, 61 x 49 inc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