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틴 홀츠하우저는 ‘구체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 중 한 명이다. 카메라 없이 오직 암실에서만 만들어진 그의 작업은 마치 ‘빛의 스펙트럼’을 보는 듯하다.

16 mal 1-4,2, 1993, Four Prints, Colored Light on PE-color paper, 50 x 40 cm each eelment ⓒ Karl Martin Holzhäuser, Courtesy of Yossi Milo Gallery, New York
개인적·사회적 이슈 없는 ‘구체사진’
‘구체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 칼 마틴 홀츠하우저(Karl Martin Holzhäuser)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구체미술(Concrete Art)’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참고로 ‘Concrete Photography’를 지칭하는 우리말이 없으므로 ‘구체사진’이라고 직역한다. 1930년 네덜란드 화가 테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가 처음 언급한 ‘구체미술’은 내면의 관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추상미술을 뜻한다. 색채와 형태를 강조하는 기하학적 추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이 눈에 보이는 대상(나무, 소 등)보다 더 구체적이다.’라는 생각도 담겨 있다. 사전적 의미만 보면 ‘구체’와 ‘추상’은 동떨어진 단어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체미술’과 ‘추상미술’의 결은 서로 비슷하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한 것과 달리, 구체미술은 태초부터가 추상이라는 점이랄까. 구체미술 연장선에는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색면회화, 추상적 무늬와 색상을 반복하는 옵아트 등이 있다.
‘구체사진’은 구체미술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구체사진의 시초는 1900년 즈음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빛과 선을 패턴화한 앨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의 <Votographs>(1916~1917)가 선보이면서부터다. 사진이 무언가의 지표만이 아닌, 지각적 성격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개인의 감정이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지 않은 기하학적인 사진도 독립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구체사진’ 범주 안에 드는 작가로는 나즐로 모홀리 나기, 만 레이, 알렉산더 로드첸코 등이 있다. 현재 뉴욕 요시밀로갤러리(Yossi Milo Gallery)에서 만나볼 수 있는 칼 마틴 홀츠하우저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그야말로 구체사진을 위한, 구체사진에 의한 작업이다. 현실과 관련해 아무런(혹은 의도적인) 언급 없이 오로지 선과 면으로 구성된 사진만 보여줄 뿐이다.

88.4.3., 1988, Colored Light on PE-color paper, 60 x 50 cm

87.13.b., 1987, Two Prints, Colored Light on PE-color paper, 60 x 50 cm each element

87.28.5., 1987, Two Prints, Colored Light on PE-color paper, 59.5 x 50 cm each eelment
빛으로 그린 그래프
칼 마틴 홀츠하우저의 작업은 마치 수학 그래프를 보는 듯 일률적으로 배치된 색동 막대와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빛의 파편들이 모여 새로운 조형 언어가 탄생한 느낌이다. 원근감과 입체감도 경험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이 카메라 없이 암실에서 손으로 이뤄졌다. 경외심마저 들 정도다. 작업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작업은 포토그램과 솔라리제이션을 섞어놓은 것 같다. 핵심은 직접 제작한 발광 도구(Lichtrakel, 슬라이드 형식으로 여닫을 수 있는 직사각형 상자 안에 램프를 넣음)를 이용, 다양한 색상을 가진 빛에 인화지를 노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철저히 계산된 작가의 움직임이 더해지면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의 작업에는 별다른 제목이 없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독립된 개체라는 구체사진의 특징처럼, 사진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에게 사진이란 빛을 이용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맥락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없다.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당연히 생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칼 마틴 홀츠하우저의 작업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사진 안에서 대상이나 의도를 찾는 대신, 선과 색채 같은 요소에 집중하는 것. 다시 말해, 선과 색채 등의 요소를 대상으로부터 해방시켜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물론,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받아들이는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는 있다. 그래야만 형식적 속성이 선사하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2차원 요소들의 운동감과 입체감, 색채의 층계 등)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최근 자주 접할 수 있는 ‘매체실험’적인 작업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Karl Martin Holzhäuser 독일 출신. 기하학적 요소가 인상적인 ‘구체사진’의 대표 사진가 중 한 명이다. 빛을 이용해 선과 색채 등의 요소에 집중하게 만드는 사진작업을 한다.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진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뉴욕 요시밀로갤러리(Yossi Milo Gallery)에선 그의 개인전 <Lichtmalerei>(~3.9)이 진행 중이다. www.kmholzhaeuser.com

87,20., 1987, Two Prints, Colored Light on PE-color paper, 60 x 50 cm each eelment ⓒ Karl Martin Holzhäuser, Courtesy of Yossi Milo Gallery,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