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용의 퍼스펙티브

2025-02-05 · ART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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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모방에서 오는 힘 있는 미학
심상용(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미술사학 박사)

 

 

   나는 영국인이 되려 한다. 

   동양의 남성이 전형적인 서구 여성의 드레스를 입고, 라푼젤, 백설 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분장한다. 배찬효가 택한 동화들에는 하나의 서사가 공통적으로 잠복해 있다. ‘약자가 행복하기 위해선 강자의 질서에 따라야 한다.’이다. 모방과 복종의 교리에 대한 암묵적인 설교다. 
   배찬효는 영국에서 동양 남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느꼈다. 서구의 모더니티가 세운 금자탑인 타자의 규범에 포획되고, 이윽고 그들의 리그에서 배제되는 불안이 엄습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즉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과 최대한 비슷해져야 했다.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그들의 피부색과 문화를 모방해야 했다. 배찬효의 <의상속 존재(Existing in Costume)> 연작이 태어난 배경이다. 당시 배찬효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영국인이 되려 한다.” 영국인이 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는 회칠을 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에 의하면, 위장은 절망의 제1 공식이자 모든 절망의 공식이다. 위장은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 아니고자 하는 나약한 상태”에서 비롯된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절망한 사람은 존재 자체를 문제로 생각하기에 이르고, 결국 문제투성이인 자신과 결별하기를 원하게 되는데, 그때 호출하는 것이 바로 위장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를 변화시키는 전략으로서의 위장이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나약한 짐승이 몸을 숨기기 위해 임시로 피난처를 찾는 것, 아니면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의 방어 기제와 유사하다. 배찬효의 피부색과 복장 위장의 맥락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사고(思考)는 결코 강요할 수 없지만 회피하기 위해 위장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 사고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이 몸을 숨기는 것처럼 우선 거짓으로 피난처를 찾는다. 공포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종종 거짓의 구덩이에 깊게 파고 숨어든다. ……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지향하는 바를 상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찬효의 모방전략은 실패를 거듭한다. 과장된 회칠은 우스꽝스럽고 오히려 전형적인 동양 남성의 얼굴을 강조한다. 굵은 힘줄이 돋은 투박한 팔뚝은 타자의 규범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한 기획임을 거듭 알린다. 영국인을 모방하려 할수록, 비-영국인으로 귀착된다. 옥시덴탈리즘적 욕망은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간다. 나이지리아계 영국작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처럼 아예 머리를 없애거나 머리 대신 지구본이나 전구를 사용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이 실패는 <동화책(Fairy Tales)>(2010)과 <형벌(Punishment)>(2012), <마녀사냥(Witch Hunting)>(2015) 연작으로 운명처럼 이어진다. 위장은 실패한 위장이 되고, 형벌은 실패한 형벌이 되며 마녀사냥은 실패한 마녀사냥이 된다. 장소와 소품, 의상 고증이 완벽한 재현을 실현할수록, 위장은 그에 비례해 절망적인 것이 된다. 사실성의 극치가 실패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분장과 복장 위장에 만전을 기하더라도,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은 더 노출되고 위험에 처한다. 그는 여전히 동양인 남성이고, 그들의 타자와 비주류 예술가 배찬효로 고무줄처럼 송환된다. 그런데 이 실패는 의도되고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실패로, 이 세계의 미학적 긴장감을 이끄는 요체다. <의상속 존재 29>(2007)에서 배찬효는 그의 한국군 복무를 증명하는 군번줄을 공공연하게 들고 있다. 사진 속에서 배찬효는 성공한 위장을 안도하고 자축하는 인간이 아니라, 실패한 모방과 그로 인해 더 선명해진 아시아인 남성과 그 황갈색 피부를 견디는 인간이다. 이 실패가 나약한 심리상태를 넘어, 오히려 뿌리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지지하는 강인한 근성의 이름이 되는 이유다. 배찬효의 사진을 낯선 정체성 해체와 또 하나의 혼종이나 잡종의 탄생을 기념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로, '고정된 진실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핏기 없는 포스트모던 담론의 시각적 삽화로 읽는, 식상하고 권태로운 해석 안에 가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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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은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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