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용의 퍼스펙티브

2025-04-02 · ART_PHOTO

대표 이미지

심상용의 퍼스펙티브

‘탈출’의 두 유형, 이제 떠날 시간

페터 라이빙(Peter Leibing)의 〈자유로의 도약(Leap into Freedom)〉(1961)

요제프 쿠델카의 〈시계-프라하(Watch- Prague)〉(1968)

 

심상용(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자유의 환상

 

  

1961년 8월 15일, 역사가 ‘자유로의 도약(Leap into Freedom)’으로 이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명명은 사건의 본질과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한스 콘라드 슈만(Hans Conrad Schumann), 당시 19세의 청년이 이 사건의 주인공이다. 

 

   콘라드와 같은 19세였던 서독의 사진작가 페터 라이빙은(Peter Leibing) 서독 경찰로부터 그날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서 동독의 국경경비대소속 군인 한 명이 훗날 베를린 장벽이 될 철조망을 넘어 서독으로 귀순할 거라는 제보를 받았다. 라이빙이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도착했을 때, 철조망 너머로 연신 담배를 피우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한 젊은 동독 국경수비병과 그 건너편으로 순찰 중인 두 명의 경비병을 볼 수 있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탈출을 시도할지 알 수 없었다. 오후 4시 경 그 일이 일어났다. 담배를 피우던 병사가 반쯤 피운 담배를 인도에 던져버리고, 뒤로 물러나 철조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조망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어깨에 맸던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은 점프하면서 벗어던졌다. 불과 몇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라이빙은 들고 있던 카메라로 20세기 후반의 냉전기에서 서방체계의 우월성을 상징하며 ‘자유로의 도약’으로 명명받게 될 순간을 포착했다.

   서독에서 콘라드의 정착은 겉으로는 순조로워 보였다. 아내를 만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에르빈이 태어났다. 서독 정부의 주선으로 와이너리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로는 잉골슈타트(Ingolstadt)의 아우디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일했다. 정착한 지 2년이 되던 해에 첫 번째 자동차인 폭스바겐 비틀을 구입했다. 축구팀 FC 바이에른 뮌헨을 응원했고,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번민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가장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그가 동독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이었다. 자신의 탈출로 인해 그들이 당할지도 모를 험한 꼴을 생각하니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일신의 자유를 위해 함께 했던 동료들을 버렸다는 수치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서독 생활 초기부터 콘라드의 거주지를 파악하고 감시했던 슈타지(stasi.동독 비밀경찰)에 의하면, 슈만은 정확히 2주마다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그것들은 비밀경찰에 의해 검열되었고, 그가 가족에게 받았던 편지들도 동독의 국가안보국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

전문은 사진전문매거진 <월간사진>
4월호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