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예술의 연금술

2020-12-22 · ART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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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울고 있는 노인 : 영원의 문턱에서>, 1890, 캔버스에 유채, 80x64cm, 암스테르담 크뢸러뮐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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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피에타>, 1889, 캔버스에 유채, 73x60.5cm,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 렌항

“화가는 자신 내면의 소리가 가지는 명확한 색조를 찾아내 대비되는 색들로 화성을 이루어야 한다.”라는 칸딘스키의 말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를 두고 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고흐는 자신을 옭아매던 심리적 고통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작에 매진했다. 그가 자살전 1년 동안 그린 작품만 해도 200여 점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고흐를 괴롭혔던 몇 가지 정신과적 장애는 조울증, 간질, 청각 질환, 알코올 중독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정신 질환과 고통은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가 그림 속에 강렬하게 펼쳐놓은 노란색과 푸른색의 대비는 조증과 울증 사이를 오갔던 당시의 심리상태를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우울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진가 렌항(任航,1987~2017) 역시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은연중 사진작품에 반영한 듯하다. 남녀 모델들이 취하는 극단적인 자세와 웃음기 하나 없는 무표정에서 기괴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극단적이고 위태로운 마음은 이미 자살 전부터 작품에 담겨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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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병든 아이>, 1885~1886, 캔버스에 유채, 119.5x118.5cm, 오슬로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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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1893, 보드에 템페라, 83.5x66cm, 오슬로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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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네 그루 나무>, 1917, 캔버스에 유채, 오스트리아 미술관



뭉크 & 에곤실레

예술의 역사를 세심히 들여다보면, 예술가의 불안정한 감정이 명작의 뿌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뭉크와 에곤 실레가 대표적인 예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에게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과 질병의 공포가 따라다녔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등졌고, 네 명의 형제도 병을 앓다가 뭉크 곁을 떠났다.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이 작용한 탓일까. 질병으로 되풀이된 가족의 죽음은 뭉크에게 어두운 내면을 형성시키며 그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대표적으로 뭉크의 <병든 아이>는 이불에 얼굴을 묻은 보호자의 좌절감과 아이의 우울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죽음과 연관된 암울한 기억과 감정이 그의 심리 저변에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뭉크만큼이나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나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네 그루 나무>처럼 자신의 심리를 풍경에 빗댄 작품을 창작했다. 결핍을 상징하는 그림 속 앙상한 나무가 차갑고 쓸쓸한 기운을 전달하는 이유다. 불안과 공포의 심리가 담긴 뭉크와 에곤 실레의 작품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모두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어두운 기억이나 마음과 유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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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푸른 방>, 1923, 캔버스에 유채, 90x116cm, 파리 퐁피두센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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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그물 치는 사람들>, 1914, 프랑스 낭시미술관



수잔 발라동 & 쿠사마 야요이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와 영화배우 라이언 고슬링의 공통점은? 바로 어린 시절 ADHD를 앓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 수영과 연기를 통해 그 에너지를 분출함으로써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ADHD는 쉽게 싫증을 내는 주의력 결핍, 행동이 부산스럽고 과격한 과잉활동, 참을성이 부족하고 감정변화를 쉽게 드러내는 충동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과거 예술가 중에서 ADHD를 앓은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로는 프랑스 화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이 있다. 학창 시절 그녀는 벽에 기어오르거나 발코니에 매달리는 등 남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성향은 창작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잇조각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당대 여성 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몸을 과감히 그려냈다. 그리고 야수파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상을 활용해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녀의 거칠고 유별난 성향은 타인에게 거부감을 주었지만, 예술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ADHD는 아니지만,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는 자신의 편집증적인 성향을 일정한 패턴의 점들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정신질환 탓인데, 강박증처럼 점을 표현하며 고통을 해소하는 그녀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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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위트릴로, <클리냥쿠르의 교회>, 1913~1915, 캔버스에 유채, 73x100cm,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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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위트릴로, <노트르담 성당>, 1929,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모리스 위트릴로 & 루이스 부르주아

ADHD 기질이 충만했던 수잔 발라동에게는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가 있었다. '내 삶은 나의 것’을 외치는 수잔 발라동 탓에, 아들인 위트릴로는 성인이 될 때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은 기대할 수 없었고, 가난까지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위트릴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정신적 공황을 경험했다. 수잔 발라동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되는 법이다. 위트릴로는 자신의 상처를 예술로 극복했다. 그는 흰색의 성당과 병원을 캔버스에 담아 현실로부터 구원받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그런가 하면, 현대미술가 중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도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성향과 불륜 때문에 상처로 얼룩진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 심리적 상태는 아버지에게서 해방되려는 심리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발전했다. 섬세함과 끈기를 상징하는 거미를 형상화한 <마망(Maman)>은 그녀가 모성애에 경의를 바치기 위해 완성한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루이스 부르주아와 모리스 위트릴로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도 예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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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1650, 캔버스에 유채, 140x120cm,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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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 208x264.5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 디에고 벨라스케스

미움 받을 용기와 현실과의 타협 중 무엇이 옳은 길일까. 17세기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와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삶을 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이들은 각각 궁정과 미술계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보여준 행보는 각기 달랐다. 포르투갈계 유대인이었던 벨라스케스는 신분 상승에 대한 목표를 이루고자, 당시 스페인의 국교였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리고 다른 궁정화가들과 달리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상류층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와 달리 인상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삶은 ‘미움 받을 용기’ 그 자체였다. 무명이었던 마네는 미술계로부터 인정받길 원했지만, 대중과 평론가들은 그의 도발적인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림피아> 등을 보고나서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마네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확신에 찬 예술관을 고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동료 예술가들과 대중이 그의 진가를 서서히 알아보게 되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행보를 보인 마네와 벨라스케스의 삶을 보면, 개인이 사회 속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아들러 심리학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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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타신의 산>, 1927, 종이에 수채, 24x30.3cm, 바덴 위르텐베르크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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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야비드가의 꿈>, 1910, 캔버스에 유채, 204.5x298.5cm, 뉴욕 현대미술관



헤르만 헤세 & 앙리 루소

긍정심리학은 자신의 의지로 만족감을 추구하는 삶에 주목하는 연구 동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무관하게 나름의 방식대로 소소한 행복을 추구했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불우했던 앙리 루소는 결코 자신의 삶에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하며 미술작업을 지속해나갔다. 정글과 숲을 소재로 한 루소의 작품들 속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이유다. 루소와 달리 헤르만 헤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예술가이다. 그러나 신학자 집안에서 성장하며 창작에 대한 욕구를 억눌러야 했고, 부모와의 갈등과 답답한 신학교 생활은 그를 힘들게 했다. 헤르만 헤세는 미술을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는 알록달록하고 밝은 색감으로 마을 풍경을 그렸는데, 자신의 심리상태와 상반되는 표현 방식이었다. ‘참을 수 없던 이 모든 쓸쓸함으로부터 찾은 나만의 탈출 방법’이라며 그가 생전에 작성한 편지 속에서 미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넘치는 에너지와 고통을 표출하고자 그림을 그렸다면, 헤르만 헤세와 앙리 루소에게 창작활동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