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을 ‘드러내다’ _ 이명호

2020-12-24 · ART_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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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명호의 개인전 <[드러내다] / [dr?næna]>에 ‘월간사진’ 에디터와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방문했다. 사진 에디터의 시선과 학예연구사의 시선, 그리고 이명호의 작업이 만나 형성된 동위각과 엇각은 어떤 모습일까.

 

Nothing But #2, 2018

 

무한한 확장성
이명호는 해외 사진계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나무(Tree)>(2004~) 시리즈 등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업으로 각광받아 대중적인 영역에서도 입지를 굳힌 작가이다. 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드러내다]/[dr?næna]>는 이명호 작업의 기존 형식 추구 개념인 ‘재현(再現)’과 ‘재연(再演)’, 그리고 행위 프로젝트로서 진행된 설치작업으로부터 형상을 드러내고 들어낸 과정을 담은 종이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실험의 여정을 총망라한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전시장은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공간[햐:야치]는 하얀 공간에 ‘재현(再現)’ 개념을 드러내는 <나무(Tree)> 시리즈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캔버스를 자연대상의 배경장치로 이용한 작업들이다. 리듬적 굴곡이 느껴지는 언덕, 바람에 몸을 맡기는 수풀 등의 풍경은 고요하고 서정적이다. 그 안에서 채택되어진 나무들은 하얀 캔버스로 호명되어 온전한 존재로 드러내어졌다. 공간[까:마치]는 검은 공간에 ‘재연(再演)’ 개념을 드러내는 <신기루(Mirage)> 시리즈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작업들은 광활한 사막에서 이루어진 설치 프로젝트로, 고비사막의 경우 9대의 버스와 300명의 학생들이 투입되었고, 이들은 각각 캔버스를 들고 자연 풍경 속에서 하얀 수평선을 이루었다. 아름답지만 삭막한 현실에 작가의 사유, 행위 프로젝트로 신기루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리즈는 더욱 적극적인 행위로써 자연에 개입하는 태도라 할 것이다. 공간[햐:야치(도)][까:마치(도)]에서는 회색 공간에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 시리즈 등이 있다. 여기 부산의 갯벌, 바다가 있다. 작업을 바라보면 온통 물내음이 가득한 듯하다. 모래사장과 그 너머의 수평선은 매끈한 구조로 수직의 하얀 캔버스는 견고한 구조로 서 있다. 이 캔버스는 지정된 자연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이 축적된 흔적들을 품고 있다.

 

(왼쪽) Nothing But_[dr?næda]_Wanggungri #1_2, 2019 / (오른쪽) Wine #1, 2018

 

이명호의 작업들은 <사진-행위 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를 중심으로 ‘재현’과 ‘재연’의 형식과 개념으로 구성된 것이며, 최근작인 텅 빈 캔버스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마치 단색화를 보는 듯한) 등으로 매체형식과 사유개념 확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전의 주요 이미지들은 현존하는 자연의 형상으로 가시화되었다. 나무, 풀, 신기루, 돌, 사막, 갯벌, 바다 등의 자연생태를 이루는 사물대상은 문명의 저편에 있는 선택된 ‘사유의 대상’이다. 작가는 그 특정장소의 사물(자연)을 선택했고, 하얀 캔버스라는 장치를 배경으로 두어 ‘의미화’ 하였다. 캔버스는 대상을 현실에서 분리하여 예술로 현존하게 한다. 대형 설치 프로젝트의 소재로, 때로는 대지미술의 형식을 만드는 도구처럼 자연에 개입하여 판타지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작들에는 여백으로,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 그 존재로 설치되어 철학적 개념을 담은 오브제로 위치하거나 개념 그 자체로 존재하기도 한다. 특히, 신작 <[드러내다]/[dr?næna]>는 사진을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인 종이 위에다 잉크를 얹는 기법으로 형상을 드러내고, 다시 종이 위에서 잉크를 걷어 형상을 들어내는 작업과정으로 완성되었다. <텅 빈>과 <꽉 찬>이 이중개념으로 교차되어, 일련의 무(無)의 형태인 하얀 면으로 드러난다. 이 작업들은 주요 키워드로 사용된 ‘하얀 캔버스’와도 같은 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의 확장과정이 ‘사유’와 ‘관념’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명호 작가는 이미 사진이라는 매체를 넘어 현대미술의 확장된 양식과 태도를 가진다. 또한 과정을 중시하는 ‘설치’의 방식은 예술활동에 있어서 능동적, 의도적 참여로 읽히며, 그 참여가 예술형태의 소재로 대상화되기도 한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가시화되는 이명호의 작업은 사진매체이지만 설치 오브제의 출현, 미술영역의 확대 행위, 사유적 개입으로 모든 것이 합체되는 총체적 예술작품으로 무한한 확장성을 구현하고 있다. 글 | 박진희(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왼쪽) Horizon_[dr?næda] #1', 2020 / (오른쪽) Horizon_[dr?næda] #1, 2020 / (아래) Film of Work; Nothing But #5_[dr?næda], 2020

 

서정적 순환 고리
분명 ‘사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얀 캔버스 위에 서정적 풍경이 물든 그림을 보는 듯한 이명호의 작업이다. 평범한 나무 한 그루가 작가의 시선과 캔버스 사이에 놓이면, 신기하게도 나무는 어느샌가 각별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또한,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지평선을 배경 삼아 프레임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캔버스 작업을 볼 땐 자연스레 ‘시(詩/時)적’이라는 표현도 떠오른다. 별다른 사진적 미사여구가 없더라도 아련함을 자아내는 동시에, 작업에서 쉬이 멀어지지 않도록 보는 이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고요한 분위기 아래, 발걸음을 계속 전시장 안으로 향하게 만드는 이명호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드러내다] / [dr?næna]>展은 ‘수미쌍관’ 혹은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한다. 인화지 위에 미세한 흔적만을 남긴 무언가가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가, 이내 서서히 사라지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를 기점으로, 동선에 맞춰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러티브를 이어나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전시는 이명호의 작업 세계 전반을 아우르면서, 그 안의 개념과 형식을 제시하고, 관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사진과 예술 그리고 삶의 본질을 환기하고자 기획됐다. 제목 <[드러내다]>는 ‘드러내다’와 ‘들어내다’의 동음이의어로서, ‘나타나게 하다’와 ‘사라지게 하다’를 내포한다. 이를 시각 예술 차원에서 바라보면, 재현과 재연의 관계로 볼 수 있다.

 

 

Tree #18_1_1 & 2, 2020

 

전시는 세 개의 섹션 - ‘[햐:야치]’, ‘[햐:야치(도)] [까:마치(도)]’, ‘[까:마치]’ - 으로 이뤄진다. 먼저, ‘[햐:야치]’는 ‘재현’의 공간이다. 그의 대표작 <나무(Tree)>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촬영 당시의 환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표상(表象)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햐:야치(도)] [까:마치(도)]’는 ‘재현’과 ‘재연’이 혼재되어 있다. 다대포 해변에 구조물을 세워 촬영한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를 감상할 수 있다. 귀납인지 연역인지, 기록인지 성찰인지, 실재인지 아니면 실재와 실재가 만나 허구가 된 것인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까:마치]’는 ‘재연’에 방점이 찍혀있다. 세 개의 섹션 중 가장 회화적인 작업(<수평선(Horizon)>, <신기루(Mirage)>)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이 사진으로 안 보이게 하는 절묘한 ‘톤 조절’과,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치환하는 ‘인화지를 긁어내는 행위’가 인상적이다(작업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무언가를 들어냄으로써 내연(connotation)을 드러내는 ‘작가의 개입’과 다름없다.


<[드러내다] / [dr?næna]>에서 선보이는 작업의 핵심은 ‘애써 사진을 만들고, 도로 사진을 없애는 것’이다. 종이 위에다 잉크를 얹는 방법으로 사진을 만들고, 다시 종이 위에서 잉크를 걷는 방법으로 사진을 없앴다. 표면적으로 재현과 재연에 갇힌 사진을 내세우고 있으나, 기실 전시는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라는 사진을 둘러싼 신화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시선과 응시는 합일될 수 있는지, 카메라가 아닌, 사진가의 개입은 사진을 다른 매체가 위치한 곳으로 전치할 수 있는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종합하자면, 이명호의 <[드러내다] / [dr?næna]>는 ‘사진’과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의미의 매체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