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라! _ 크리스티네 에르하르트

2020-12-24 · ART_PHOTO

대표 이미지

(왼쪽) The Studio II / (오른쪽) Untitled

 

실내 공간을 수놓은 기하학적 형태의 구조물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인지, 인테리어 사진 위에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레이어를 덧씌운 것인지, 쉬이 판단하기 어려운 크리스티네 에르하르트(Christine Erhard)의 작업이다. 우리의 일상 공간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추상적’ 느낌이 강한 그의 작업을 사조(-ism)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으로 순수한 기하학’으로 정의되는 절대주의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로 대표되는 구성주의를 섞어놓은 듯하다.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할 때만 하더라도, 그에게 사진이란 작업을 기록하고, 분류하는 매체(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사물 자체보다 사물 ‘이미지’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사진을 주 매체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크리스티네 에르하르트 하면 떠오르는 작업은 ‘건축 공간의 표현’과 ‘3차원의 물리적 공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그의 작업 기저에는 ‘현실을 재현한다.’라는 사진을 둘러싼 정형화된 생각을 뒤집고자 하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직접 종이로 실내 공간을 제작한 다음, 작업실에서 촬영을 진행했다(일부 작업은 소비에트 연방의 건물 사진 차용). 흥미로운 점은 촬영을 계산해 설치한 카메라의 눈과 동일한 시점으로 실내 공간을 조각한다는 것. 여기에 종종 아나모픽(Anamorphic,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현상) 기법도 사용하는데, 이들은 선형 원근법과 사진적 원근법의 교차/충돌을 실험하는데 제격이다.

 

1. (왼쪽) Atelier / (오른쪽) Bove & 2. (왼쪽) P IV / (오른쪽) BA I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티네 에르하르트는 “현대 건축 이미지는 주로 사진으로 전달된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공간은 그림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견 건축과 미술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업이 새로운 시각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 같으나,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미지 홍수 시대, 우리 삶은 실제 경험보다 이미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그렇다면 크리스티네 에르하르트가 러시아 모더니즘을 조각/사진 작업에 적용한 이유가 명확해진다. 그것은 바로 실험적 기법을 통해 보는 행위를 재조명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이미지의 모방적 집착과 그 영향력에서 멀어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Christine Erhard 독일 출신.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프리츠 슈베글러(Fritz Schwegler) 지도하에 조각을 공부했다. 사물 자체보다 사물 ‘이미지’에 더 흥미를 느껴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www.christineerhard.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