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 <화양연화>, 수 리첸

<에로스>(왕가위 등, 2004) _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전하는 세 편의 진실한 연애담. 욕망과 사랑의 미묘한 경계를 그렸다.

<화양연화>(왕가위, 2000) _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왕가위 영화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으로 꼽힌다. <제53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최우수예술성취상’을 받았다.
“사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대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아려졌다면, 분명 당신은 ‘홍콩 영화 키드’일 테다. 아! 어쩌면, ‘왕가위 영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낭만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왕가위 영화의 매력은 ‘가슴 시린 아련함’을 묘사한 탐미주의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얕은 심도와 교차하는 정(靜)과 동(動)이 만들어낸 그의 영상 앞에선 그 누구도 무장해제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스타일리시한 영상도 영상이지만, 왕가위 영화의 ‘스틸사진’ 역시 눈길을 끈다. 영화 내용을 함축한 것 같은 한 장의 사진은 그의 영화에 강한 끌림을 느끼게 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피투게더>(왕가위, 1997) _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남자의 사랑을 묘사한 영화. 양조위와 장국영의 연기가 돋보인다. 제목 ‘해피투게더’는 연인 관계,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 등 모든 관계에 대해 회복과 희망을 의미한다. 처음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국내 수입이 금지되었다가, 정사신을 편집하고 나서야 개봉할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 <해피투게더>, 아휘
그 중심에 윙 샤(Wing Shya, 夏永康)가 있다. 지금은 패션 사진가로 유명하지만, 윙 샤는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의 활동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윙 샤’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왕가위 영화 현장에서 탄생한 스틸사진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제작된, 내로라하는 왕가위 영화 곁에는 늘 윙 샤가 있었다. 1997년 <해피투게더>로 왕가위와 연을 맺은 그는 <화양연화>(2000), <2046>(2004), <에로스>(2004) 등에 스틸 사진가로 참여했다. 그의 사진은 여느 스틸사진과 분위기가 다르다. 기록보다는, 잘 연출된 예술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는 스틸사진도 미학적이길 원했던 왕가위 덕분이다. 이에 관해 윙 샤는 “<해피투게더> 촬영 초기, 그저 셔터만 누르던 나를 감독이 호출했던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다소 까다로운 요구였지만, 이에 맞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내 사진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저우쉰(Zhou Xun), <i-D Magazine>(2011)

오언조(Daniel Wu)와 서기(Shu Qi), <i-D Magazine>(2002)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인물의 묘한 표정을 포착한 윙 샤의 사진을 보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고혹적인 사진을 얻기 위한 그의 비결은 ‘실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여전히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고, 조명을 조절하는 일이 버겁지만, 윙 샤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사진이 매혹적인 무드를 띈다면, 이를 발전시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마음이 주인공 감정 상태와 공명을 일으켜야 단 한 컷의 사진만으로도 보는 이를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윙 샤의 패션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데,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영화 내러티브처럼 구성하는 것이 인상적이다.